피진으로 이뤄진 영화와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일단 영화소개와평론

나는 <공각기동대>를 오래 전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 일본 문화 개방을 하던 무렵 만화 영화로 처음 접했다. 어디선가 만들어진 비디오테이프 제본물을 그래도 누군가 입힌 한글 자막은 갖춘 채 불법물이라는 인식 없이 보았다. 아는 사람이 일본 만화 영화를 제본물로 꽤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통해 몇 편 더 보았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화질이 좋고 모두 자막이 붙어 있었으며 시대적 분위기 탓에 불법이라는 심적 부담도 없었다. 나는 처음에 제목이 공각기공대라고 알았었다. 비디오테이프 옆에 한글 매직으로 쓴 글씨가 그리 돼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이 일본말의 뜻을 정확히는 모르는데 많은 친구들은 그때 그 제목을 공작기동대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공작을 하는 기동 부대라고 알고 있는 투였다. 최근에 기회가 되어 영화로 재제작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미국 영화로 <공각기동대>를 새로이 접했고 이 영화의 문제적 서사 구조의 일단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지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일본 만화 영화로 <공각기동대>를 봤을 때 워낙 유명했던 평판은 영화 잡지 기사를 통해서 알고 있었으나 예술적인 시각 이미지를 중심으로 기초적인 서사 구조만을 알았었다. 다른 기억나는 몇 편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마찬가지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새로 갖게 되어 다 다시 보아야 하나 자괴감이 인다.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주체가 우익이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좌익 불안 세력을 제거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공각기동대>는 사회 비판성이 없는 우익 담화에 불과하고 그것은 <에반개리온>, <건담>도 마찬가지이다. 기억할 수 있는 몇 편의 원작이 유명한 미국 영화도 비슷하다. 영화로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알 수 있었던 이 영화의 사회 비판적인 문제적 서사 구조 중 일단은 주인공의 설정이 드러나는 점이다. 주인공은 그 사회의 민간인 중 데모하는 학생이었고 그런 사람을 체포해 뇌만 남기고 하드 바디를 입히고 기억을 없애어 세뇌해 체제를 지키는 육탄전사로 육성하는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그 조직의 명칭인 것 같다. 우익 조직의 보안 전사로 좌익 불순 세력을 제거하는 게 목적이며 대개 그들의 적들은 그들의 정체성 게임의 연장이다. 그것은 다시 일본적 기업 사회의 은유이다. 기업이며 관계며 일본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일단이 처하고 있는 정체성 위기를 은유 조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화는 이제는 비교적 흔해 미국 영화에서의 여러 작품들에서 만날 수 있다. 조금씩 다 다르지만 <본 시리즈>, <매트릭스>, <엑스멘> 따위가 기억나고 방화 중에는 최근작 중 <악녀>가 기억난다.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주인공을 비롯해 주체들의 의미화된 환경을 깨달을 수 있는데 그들은 피진(pidgin)으로만 말을 하고 객체를 지명한다. 주인공을 비롯해 주체들의 외양이나 복장과 스스로나 객체에 대해서 지칭하는 언어적 환경이 바로 의미화된 환경이다. 예를 들어 길가에서 마스크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쓴 청년들을 볼 수 있고 그 발전된 형태는 미국 영화의 슈퍼 히어로로까지 이어진다. 캡틴 아메리카나 네오를 만날 수 있고 영화 속의 인물이나 의미화된 환경의 실제 사람이나 모두 다 피진으로만 작동한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주인공의 어색한 거동과 행색에게 다른 인물들은 피진으로만 말을 하고 주인공의 몸과 행동은 피진에 따라 변성한다. 성적 수치심과 자긍심, 선민의식 따위로 배양하는 사회적 과정이 보여진다. 그로 인해 반항적이고 정체성을 망각한 하이테크 무기의 사회화 과정이 이루어진다. 변성한 시공간을 빠져나오려고 주체는 끊임없는 의심의 끝에 무의식을 보고 우연적 사실과의 조우를 통해서 비로소 사실적 주체로 재탄생하고 영화적 서사 구조는 정상 담론으로 삐쳐 나온 끝에 바뀐다. <공각기동대>를 만화 영화로 보고 미국 영화로까지 보고 나더니 나는 비로소 영화와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본질의 일단을 또 하나 깨닫는다. 


정체성을 자신할 수 없는 순간이 의미하는 존재성 영화소개와평론

제작되어 개봉하기까지 영화는 여러 변하는 조건에 처한다. 악녀가 처했던 변하는 조건은 개봉할 무렵의 바뀐 정치적 지형도이었다. 여성 타자의 정체성이 변했고 가해피해자의 신화의 구조가 변했다. 갑작스레 바뀌는 풍향에 비해 벌써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들의 진동은 나뭇가지를 어떻게 꺾을지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풍향이 유동적일 때 배는 출항하지 않아야겠으나 만선을 기대할 때 출항을 결정한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우익 단체의 지사이지만 범죄 단체에 살해되고 그 범죄 단체의 수괴를 은인으로 안 채 그 속에서 킬러로서 양육된다. 대단한 킬러로 양육된 후 어느 날 자신을 키워 준 수괴가 살해된 걸 알게 되어 복수를 감행한다. 도입부의 한 시퀸스가 할당되는 부분이 그것인데 단신으로 폭력 조직을 괴멸시킨 후 우익 단체에 구조된다. 그 우익 단체에서 새로이 척살자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지만 죽은 줄 알았던 수괴를 작전 도중에 발견한다. 과거의 연인인 주인공이 죽은 줄 알고 있는 수괴와 주인공은 차차 알아가는 대결을 벌이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의 후반부 파국에 이르러 주인공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깨닫고 영화의 전반부를 이끄는 핵심 서사 장치의 의문을 제거한다. 왜 우익 단체가 주인공을 택했을까 운명론적 시금석이 서사시적으로 검증되는 것이다. 영화 초반의 서사가 치밀하게 종점을 향해 치닫는 구조에서 운명 서사의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의 종강을 보면서 드는 의문은 관객에게 보여주기로 제공되는 운명 서사의 구조를 주인공이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냐의 질문이다. 우익 단체가 비로소 두어 번 국정원으로 발화되고 국장이 영사막의 밖으로 나간 후 수괴를 처단하는 단계에서의 주인공의 자기 서사에의 인지가 불확실한 것이다. 수괴를 처치한다면 진실한 자기 서사의 구성을 주인공은 확신할 수 없이 규정된다. 마크나 간단한 상징 하나 없이 두어 번의 발화로 규정된 후 우익 단체는 영사막의 밖으로 이윽고 증발할 것이고 그 누구도 주인공의 자기 서사를 규명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아 관객의 마음을 애태운다. 시종일관 주인공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폭력의 담지체인데 그 증오하는 마음의 심층에 깔린 복수심이 작동하는 바가 범죄 단체에 속할 때와 우익 단체에 속할 때가 다를까. 한 번은 은혜로 두 번은 정의로 다가온 마음가짐의 밑바탕에는 봉건적인 충성심의 견마지로가 숨어 있으나 자기의 존재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개체의 유아론이 담지해 있는 것이다. 사건과 사물에 내제되어 있는 신경증적 징후의 배후에는 누구도 진실을 발화하지 않고 기억과 사고를 조작할 뿐 목적과 동기에서 동일한 두 조직이 건재하다. 한국적 조직관의 상징과 같은 양대 조직의 의미화 과정은 방화에서는 기실 흔한 주체의 신경증의 원인이다. 서로 상이한 목적과 동기에서 주체에게 아무런 사실의 개시가 없이 주체의 목적인만을 유발하는 조직이 말이다. 주체에게 실제로 중요한 것에의 목적인으로서의 접근은 주체를 신경증을 유발해 고도의 기량의 폭력을 담지하는 기계로 만든다. 주체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기만과 자기 연민의 문화적 토대가 영화에 자기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기만과 자기 연민의 문화는 신경증 유발의 폭력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충효의 정신이 재생산하는 사회관계의 폭력성을 자기 반영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정체성의 유래로서의 효성이 뒤틀려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정의감을 발현하고 조직은 대위되어 있는 충성을 기만과 자기 연민의 형식으로 인간에게 부과하는 기계가 된다. 조직은 아시아에서는 기계이자 근원이자 거소인데 그것의 뿌리는 국가나 가정의 대위성이다. 존재는 가부장에 의해 규정되고 조직에 의해 이중 규정된다. 서구적 형식의 자아와 개체는 내면이 설계되지 않은 배역으로는 규정될 수 없다. 내면이 빠진 채 영사막으로 투사되는 비존재의 먼지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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