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자들의 국가 책소개와서평

오래 전에 유사한 제목의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고 그 영화는 원작이 소설이었다. 본 책은 소설은 아니고 세월호를 다룬 여러 편의 평론을 엮은 평론 모음이다. 세월호의 사고가 나고서 몇 달 후에 긴급하게 출판된 것으로 봐서 꽤 신속하게 사고에 대응하려고 신속하게 여러 필자들이 글을 써서 넘겼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글들의 질은 언급하는 사실의 수준을 비롯해 별로 높지 않다. 단지 내가 읽는다는 점의 의미가 크다고 변명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파악하는 세월호의 존재론의 철학에 보탬이 되는 독서를 기대했으니 그러지는 못했다. 본 책을 구성하는 글들은 한국 문단이 세월호에 대해서 사실은 공동의 침묵 아닌 침묵을 했으며 세월호에 대애서 사실은 눈 뜬 장님들이라는 점을 각인 시켰다. 문학이 현장과 맺는 관계의 전통적 의미는 사실적 재현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어떤 문학은 사실은 불필요한 사실과의 매개 문제를 일으킨다. 문학이 사실의 현장을 직접 매개 하는 경우는 드물어 대개 간접 매개 하겠으나 그게 그다지 올바르지 않은 정치적 사유로 귀결되는 것이다. 문학이 현장의 사실의 카메라적 증명 수단은 아니라는 점은 대개 동의하지만 문학하는 사람의 상상력이 현장의 진실을 보완하고 거기에 따라 문학을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의 척도가 제시된다는 점은 동의하기 싫은 문학장의 꼬장꼬장한 젊은 꼴통들이 드러난다. 문학이 글로 된 것들의 역사에서 벌써 일찍이 보수화를 경험했고 자유화를 재차 경험했지만 현실의 지식으로 문학은 자립하지 못했다. 그 증거가 본 책과 같은 평론집의 품귀 현상이다. 문학이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변했고 진실의 창고의 지위는 길거리의 거지에게 줘버렸다. 개나 줘 버려하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문학하는 사람의 계급 지위가 유산 계급의 일원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문학하는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풍채 좋은 사실상의 거지라는 점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국 문단이 변질된 이유에는 여러 면모가 있겠으나 본 책과 같은 사회의 진실을 외면하는 곡학아세의 글들의 전장의 전리품화 때문이다. 자기가 전리품이 되기 싫다면 자기는 전사나 투사가 되어서 적어도 자기 자신의 영계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대중의 진리나 진실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줄 정의로운 카우보이를 한심한 작가들에게 요청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대중은 독자가 되어도 허위적으로 문학장의 위풍당당을 중심으로 춤은 추어도 필요 이상의 돈을 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문학은 바보들의 똥잔치이기 때문이다. 본 책에서는 세월호의 사고에 대해서 팩트로서는 새로운 사실이 전혀 없고 기초적인 구성은 틀리기까지 한 구절이 수두룩하다. 특히 마지막 글은 사회과학문과 철학문을 버무려 세월호의 사고의 저간 사정이 나타나는데 무엇이라고 하냐면 승냥이 한 마리가 굶주림을 호소하는 듯했다. 돈에 팔릴 능력도 없고 곡학아세는 대중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먼 글들이 남루한 영계에 무엇도 지불하지 않는다. 공짜 점심은 없다. 약한 것들은 죽는다. 펜은 가르키지 않는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책소개와서평

이 소책자는 크게 네 분절로 이뤄져 있다. 그 중 세 분절은 사상의 자유로 묶을 수 있고 한 분절은 양심의 자유 보다는 종교의 자유로 보인다. 다시 사상의 자유로 묶은 세 분절은 정치적 자유로 보인다. 그렇게 볼 때 경제적 자유가 없고 종교의 자유는 잉여적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인권법적 시각으로 보는 분류법은 정치적 시각으로 보는 분류법과 그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정치적 자유나 경제적 자유는 등장하고 제반 자유권도 등장하고 거기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나타나니 이 소책자는 인권법뿐만 아니라 헌법적 시각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유하는 바가 크다. 정치 이데올로기로는 정치적 자유를 경제적 자유가 뒷받침할 때만 가치가 살아난다. 소책자에 경제적 자유는 잉여적 권리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경제적 자유는 사업할 권리, 노동할 권리로 나타난다. 그것이 발달하면 평등할 권리라든가 분배의 형평으로 나타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향유하거나 경제 발전의 사회적 목표의 보존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삶은 경제적 정의를 요구할 수 있어 사회의 불의한 경제적 부조리를 거부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방해나 수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법률 기타가 잘못되었으면 개정을 요구하는 집합적 요구를 만들 수 있다. 사회를 경제적 자유의 원리가 충족되는 형태로 바꿀 것을 결의할 수 있고 거기서 정치적 자유가 온당함의 보존을 요구할 수 있다. 사회 시스템이 경제적 자유를 지탱하는데 부적절하다고 집합적 결의를 할 때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결정할 정치적 자유의 궁핍을 발견한다. 정치적 자유란 임의적인 사회적 가치의 정립을 요구하는 것보다 경제적 자유와 같은 살아있는 삶의 문제를 결탁할 때 현실적 유의미성을 담보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추상적인 사회 가치나 도덕적 목적은 인간의 수단화 되지 않는 목적으로서의 가치를 고양하나 현실적인 살아있는 삶의 충만함이 결여될 수 있다. 이 소책자에서 내가 경제적 자유의 결여를 말하는 것은 이 소책자에서 현실적인 살아있는 삶의 운동성의 결여를 발견한 것과 동어반복이다. 노동하고 집단적 의사 결정을 하거나 집단 이익을 위해 집합 행위를 하는 것의 이데올로기적 결정성이 현실적인 살아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담론과 달라지는 측면이다. 경제적 권리를 배제한 논구는 설혹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여도 한계가 있어 사회적 계급 구성의 제 구성의 일부만을 쟁취할 수 있다. 거기서 부분적 선전선동으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경제적 목표는 사라지고 있다. 소책자를 읽으면서 유심히 관찰한 부분들 중 하나인데 현실적인 살의 살아 있는 문제를 동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고 삶의 이해력에서도 민중에게 필요한 것과 지식계층이 요구하는 것을 섞는데도 취약했다. 순수한 법학을 요구하는 법조계의 풍토를 대리하는 법학자의 현실성 결여를 염려할 수 있는 것이다. 소책자에 등장하는 보안관찰법, 빨갱이 콤플렉스, 국가 보안법과 집총 거부 또는 병역 거부가 사회와 맺는 관계를 요구한다면 그는 철인이거나 사회학자일 것이다. 소책자가 사회학 구조를 충분히 개진했으면 일독자로서의 요구사항일 뿐이다. 사회학 논의 구조로 빠지면 당연히 경제 사회의 요구 사항을 담보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삶의 현장과 유리된 공적 공간이 포섭 안하는 것이 무수한 사적 공간의 사적 이해관계이다. 텍스트가 자연스레 산출하는 이해 상충의 문제를 당파적 이해관계인 아닌 중립적 중성 학문 논구로 빠져나가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했을 때 그가 당파적 이해관계인일까 중립적인 중성적이고 순수한 판단자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적 관념의 이상은 현실적인 당파성을 넘어서는 이상의 신기루가 아닐까. 소책자에서는 입장이라는 존재가 드러난다. 추상적이고 가치추구하나 대중의 바다로 한 번도 몸을 던질 수 없는 지식인의 생각하는 갈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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