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個人의發見>과 個體 필로소피

득세했던 프랑스 철학사조가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다.
구조는 집단, 탈구조는 개인으로 본다.
프랑스 철학이 바라본 집단과 개인에 대한 시선이다.

<개인의 발견>은 근대개인의 탄생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그 기원을 16세기, 보편적 유럽으로 잡고 있다.
다른 주장에서는 개인이 르네상스의 등장, 이탈리아와 관계있다고 한다.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는 개인과 신교의 사회적구성을 관계짓는다.

번역자 최윤영은 OUN에서 남한에서의 근대의 진정한 등장은 1990년대부터라고 했다.
각인된 근대발견에의 표현은 일제시대와 박정권70년대다.
개인의 발견과 관련한 근대의 탄생이 90년대부터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상식적 사고를 하면, 조금 어이없는 이해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서 16세기 이전까지도 소급되는 것들이 한국에서는 90년대의 일이라니....

경험과 연역이 대립하는 철학방법론의 문제까지 제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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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규정하는 것은 자기결정, 자기표현, 자기의 노출, 그리고 자기성찰이다.
그게 지켜진다면 나는 개인이다. 그런데, 개인은 구조의 호명을 받기도 한다.
사회는 나를 개인으로 호출하고, 앞선 제도는 사람을 개인으로 성장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라면 그 사회는 근대이후다.
탈근대라고 할 수 있다.
최윤영은 90년대를 근대, 근대적 개인의 등장/본격화 시기라고 했다.
어색하기도 하고 맞기도 하는 언설이다.

블로그에서는 이런류의 주장들이 지나치게 선형적/직선적 역사관을 전제로 한다는 비판이 있다.
변증법을 염두에 둔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전/후진할 수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정말 고민이다.

개체들은 개인이 되었지만 제도(구조, 조직, 사회, 국가)가 어긋나면 개체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
고민스러운 개인들의 선택!!!!


문제점>
1. 구조= 제도, 조직, 사회, 국가, 역사라고 할 때 빚어지는 엄청난 간극들.
2. 역사관에서의 단순성들과 비과학성의 병존.
3. 철학적 방법론의 무지와 오류들.
4. 여전한 유럽중심주의와 동아시아정체성의 부재.
5. 서구중심주의를 어떻게 이 구조에 이식시킬까?
6. 상이한 사고들의 절합은 과연 옳을까?
7. 객관과 보편에서의 무지.
8. 데이타는 어떤 주장도 만족시킨다는 주장.
9. 개인이라는 존재의 적폐감은 이론/현실 어느 측면에서도 모순을 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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