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對한 執着과 吸血鬼의 道理?!(吸血鬼됨)-박찬욱의 <박쥐(THIRST)> 영화소개와평론

돈암에서 봤다. 돈암동 성신여대입구cgv에서 박찬욱 감독의 개봉작 <박쥐>를 보았다. 영어제목은 <THIRST>다. 목마름? 위키에 THIRST는 "Thirst is the craving for liquids, resulting in the basic instinct of humans or animals to drink"라고 쓰여있다. 액체에 대한 갈망이다. 물이 아니고 액체다. 피도 당연히 포함되나?.. 어쨋던 우리가 갈증을 말할 때 보통 물에 대한 갈증이라고 하지 피에 대한 갈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THIRST에 주목해서 <박쥐>를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서 갈증 또는 갈망이 피에 대한 것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누가 피를 갈망할까? 영화를 만든 자일까? 영화를 보는 자일까? ...박찬욱은 피를 갈망하나? 좀 뜬금없는 소리지만 내가 여태까지 본 바로는 박찬욱의 영화세계는 피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어 보인다. 박찬욱은 집요하게 피에 집착한다. 박찬욱의 피에 대한 집착이 궁금하다. 피는 몇가지 정도를 보통 지시한다. 1) 피, 물질적인 것, 헤모글로빈을 다량 포함한 액체  2)관계의 하나, 일종의 혈통같은 것 3)독일, 한국 같은 민족공동체국가에서의 민족의 순수성 등등

첫째는 헤모글로빈을 포함한 것에 관해서다. 여성은 임신을 하면 피가 모자르다. 헤모글로빈이 다량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임신부는 빈혈을 겪는다. <박쥐>에서 피는 흡혈귀의 식사다. 피가 모자르면 흡혈귀도 굶어 죽는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박쥐>는 영양관계에 관한 영화다. 누구나 식사를 해야 한다는 명약관화한 사실을 흡혈귀를 동원해서 증명하고 있다. 생명체는 영양이 필요하고 흡혈귀도 그렇다. 살기 위해서 피조물은 반드시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두번째 박찬욱은 혈통에 집착한다. 참일까? 거짓일까? <박쥐>에서 흡혈귀 송강호와 흡혈귀 김옥빈은 격렬한 정서를 벌린다. 다양한 체위와 자세를 다채롭게 선사한다. 성은 당연히 혈통을 표상한다. 성은 혈통과 관계가 있다. 아주 크다. 성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 의미의 주변에 혈통을 배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 왜 박찬욱은 흡혈귀의 2세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을까? 여기엔 박찬욱이 생각한 흡혈귀의 도리, 흡혈귀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흡혈귀는 2세를 고민하지 않는다.

세번째는 조금 복잡한다. 피가 외연을 너무 넘어갈 때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도 2차대전기 독일처럼 민족이라는 것에 상당히 집요한 곳이다. 그런 것이 영화에서 피에 대한 집착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몇몇 기호들로 보강되는 면조차 있다. 부산, 마작, 축음기, 신부.. 이런 것들이 한국이라는 피의 공동체를 풍부하게 해주는 기호로 쓰였다. 박찬욱은 피에 집착하고 한국도 피에 집착한다. 박찬욱은 한국인이며 박찬욱이 집착한 피는 한국의 피다.??? 

영화의 메이킹필름을 보는 시작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다. 왜 하필이면 신부인가? 왜 하필이면 카톨릭인가?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얼마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있었다. 그런 종교에 흡혈귀로 도전하는 게 가치있을까. 상업영화의 공식에서 신부, 카톨릭, 흡혈귀는 자주 이용된다. 그런 것을 조금씩 틀어놓은 것을 이 영화의 미덕으로 삼아야 하나? 결론은 상업영화적 공식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도덕이 아닌데 신부를, 종교를 욕먹인다고 해서 무슨 잘못인가?

<박쥐>에서 피에 대한 집착에 곱해지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섹스다. <박쥐>에는 피로 축복받은 성애의 향연이 적나라하게 벌어진다. 최근에 보기 드문 에로영화라 해도 별반 무리가 없다. 박찬욱이 섹스를 다루면 성도 성애가 될까? 여기에 찬반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박쥐>를 미학적 수사로 포장하리라.... 미학은 박찬욱에 대해 잘붙는 언어다. 그의 전작들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는 모두 미학의 외형을 뒤집어 쓰고 있다. 미학의 내용을 간직한다.

그런데, <박쥐>에 오면 영화가 조금 이상해진다. 종전의 도리아양식을 연상시키는 미학적구축이 허물어진다. 그렇다고 B급영화 운운의 지적도 이상하다. <박쥐>는 한국영화전통의 계보로 들어가려는가? 그런 상투어들로 치장하려는가? 양장을 벗고 한복으로 단장하려는 박찬욱의 치장은 모순의 게보학을 팽챙하게 낳는다. 형식미와 이미지에서, 그리고 영화의 이데올로기에서 서로 다른 발언을 하는 듯 보인다. 확실히 할 말이 많아지게 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분이다.

영화의 표층에서 <박쥐>는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발하고 있다. 그런데, 심층으로 가면? 그도 역시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종속되는 듯 하다. 자기가 발하는 이데올로기에 자기가 종속되다.?? 이건 모순구조다. 반도땅에서 영화를 만드는 자의 운명은 나운규이래로 의리적구토(투)이래로 변함없는 모양이다. 오호라 통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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