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吉鍾의 <花粉>과 <한네의 昇天>을 音響의 見地에서 보다 영화소개와평론

종함은 길함이다. 하길종은 어두운 시절 39살에 일찍 사망했다.....하길종은 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파 감독으로 알려진다. 데뷔작 <화분(72)>으로는 정치파라고 하는게 올바를 것 같다. <화분>의 파란집은 박정희의 청와대에 대한 비유로 많이 알려져 있다. <화분>은 종전에 봐서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것 몇 가지! 이 영화는 권력의 내부를 성권력관계로 들여다 본다. 들여다 보는 시점은 관음적 시점이다. 영화매체 자체가 성인남성의 관음증적 동일시 매커니즘에 의해 작동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 만큼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뒤틀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보는자와 보이는자 모두가 병들어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 70년대여!  저주받은 시대여!

모두가 미친자라고 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어떤 일부당사자가 건강하더라도 모두 미친자로 만드는 것이 병든 시대의 영화가 겪는 팔자다. 시대가 미쳤다면 그 미침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길종의 데뷔작 <화분>은 이런 불운 속에 태어났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이라는 말이 있다. 미친 시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본인도 미쳐야 한다!! 

<화분>에서 제일 신경을 괴롭힌 것은 "소리"였다. 본 매체가 겨우 구한 올드한 비디오때문이긴 하지만 너무 거슬렸다. <봄날은 간다(01)>에서 상우는 소리따라 애인도 버리고 떠난다. <서편제(93)>에서 송화는 소리를 구하고저 눈먼다. 소리는 영화에서 도달하고저 하는 구극이다. 그런데, 오래전 화분에서는 다르다. 소리는 싸이렌처럼 인간의 정념을 홀린다는 믿음이 하길종의 것은 아닐까? 소리가 귀를 괴롭히고 인간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효과가 일어난  영화가 <화분>이다.

이런 것이 집약된 부분이 하나 있다. 영화에서 파란집의 하녀(여운계분)가 다듬이질을 하는 장면이 있다. 내게 기억된 다듬이 소리른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것이다. 낭랑한 다듬이 소리와 전광판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실루엣은 묘한 울림을 내게 던져줬고, 그후 88의 효과를 알게된 후에야 여기서 벗어났다. 다듬이는 때론 옛사람들의 고된 노동의 상징이기도 했다. <화분>에서 다듬이질은 다른  의미망과 효과를 가진다. 하길종이 음향을 얼마나 잘 쓰는가가 드러나는 집약이다. 파란집의 신경쇠약 직전의 분위기를 너무 잘 전달했다. 한번 들어보길~~

오늘은 <한네의 승천(77)>을 보았다. 정부의 공적지원에 힘입어 디지탈 편집된 판으로 보았다. 최초의 관심사는 역시 소리였다. <한네의 승천>에서는 또 어떤 음향일 것 인가? 처음 예상은 <화분>의 예리한 음향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72년부터 77년까지는 역시 오랜 시간이 흐른 후다.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정확히 말하면 소리의 축소다. 전체적으로 음향을 줄여 썻고 대사도 적었으며, 쐬하는 바람소리외에는 새소리가 인상적이다. <화분>에서 소리를 중요한 영화적 기제로 쓴 것에 대면 외려 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나, 배제는 밖으로 구축해 내는 것이 있는 법이다. <한네의 승천>의 영상과 어울려 어떤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한네의 승천>에서 하길종의 소리가 생산해낸 것이다.

<한네의 승천>은 77년이라는 시간을 무색하게 하는 영화다. 현대적 감각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수려함을 보여준다. 스토리텔링 자체도 마치 프랑스 고전극을 읽는 듯 하게 하고, 영상 또한 정묘한 정치를 한다. 지금의 시점에서 젠더와  성정치, 권력관계학의 관점으로 읽어들여도 산출해 내는 바가 대단해 보인다. 참 대단한 영화다..... 한네는 승천하지 못하고 추락한다. 폭포로 떨어진다. 영화의 이름을 배반하는 결론이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라는 점이 더 대단하다. 죽은 하길종은 무덤에서 이 외로운 관객에게 충고를 던진다. 도식에 사로잡히지 말라!! 깨어나라!! 그리고, 각성하라!! (체제의) 최면에서 풀려나라!!

#주기 : 글을 조금 손봤다. 일부 비문을 정치한 문장으로 돌려놨다. 내게 두편의 하길종 영화는 적확하게 동시대적 영화로 보인다. 70년대의 권력의 병리현상에 도전해 보인다, 들린다. 소리라는 매개로 권력의 병리, 성권력관계를 (영화)독해하려는 것은 소리가 의도적으로 쓰였는가의 외부에 존재한다. 외부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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