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디플로마티크 8호 <'녹색뉴딜' 그 불편한 진실>중에서 부분들... --경제를보는눈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64)

르몽드디플로마티크 8호 <'녹색뉴딜' 그 불편한 진실>에서 부분부분 따옴.

- 다소 이론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재정지출의 준거를 ‘내재적(intrinsic) 생산성’에 두도록 본질적인 원칙을 정해야 한다. ‘내재적 생산성’이란 투자에 대한 이익 산출 능력이 아니라 지구상의 삶과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의 보전에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막대한 군비체제의 생산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역설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기존의 투자 개념, 즉 삶의 수준 향상을 도모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건강과 자연환경에 부정적인 효과를 내는 투자와 지출에는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 진정한 ‘녹색 뉴딜’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근본적인 단절을 요구한다. 현재의 경기 후퇴 국면에서 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케인스주의 정책을 도입하면서도 경제 전략의 신자유주의적 근본은 수정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 이것이 확인된다면, 이들의 공공투자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국고의 상당 부분을 사기업인 은행과 보험회사를 구제하는 데 퍼붓는 정부 당국의 성향이 이러한 예가 될 것이다. 

- 그런데 현재 진행 중인 거시 경제정책은 총수요를 늘려서 성장을 다시 촉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수요를 안정화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가? 자본주의 경제는 항상 에너지 소비의 무한정한 증가를 과시해왔다. 그런데 이런 에너지의 과소비가 화석연료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체하는 추세 속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생태학적 측면에서 보면, 오직 ‘정상(定常)상태’(stationary state) 경제 혹은 ‘순환적 흐름’(circular flow) 경제만이 지구의 천연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는 하나의 역사적 기회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이 성장을 향한 미친 경주에서 동시에 감속하려고 동의할 리는 거의 없지만 어쩌면 우리가 현재 겪는 것과 같은 고통이 우리를 새로운 대안에 눈을 돌리게 하는 기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 자, 이제 ‘녹색 뉴딜’이 무엇과 유사한지 그려보자. 이 그림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실업과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청정에너지 자원의 활용을 장려하는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투자로 그려진다. 독일의 예는 이 도식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확연히 증명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녹색으로의 이행 정책이 급진적인 방식으로 추진될 때에만, 즉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방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기존의 사고방식 및 실천과의 결별을 수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스와 석유의 추출 및 교역구조에 기초한 현재의 도식이 종말을 고하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녹색 에너지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기술도 태양열 집열판 부품들 같은 원자재를 필요로 하며,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즉, 이 시스템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 100% 무공해 에너지원을 향한 이행은
무성장 경제, 심지어 축소 경제로의 이행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 케인스 이론은 지구상에 광적인 성장기가 막 시작될 무렵에 나온 이론이기 때문이다. 부의 축적을 목표로 자원을 낭비하는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 경제는 앞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을 안고 있다. 그 대신 지구를 고갈시키지 않고 보전하는 ‘정상 상태’ 경제로 대체돼야 한다.

**** 무성장경제, 축소경제라는 말이 언뜻 눈에 밟힌다. 그간 우리의 머리를 누르는 저주는 성장경제의 필연성이다. 이것은 개인의 생활조차 규율한다. 자원없는 반도국가에게 성장과 수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조차 보인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무성장경제라는 임펙트강한 말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내가 아는 경제학은 혹여 매트릭스 속의 경제학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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