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Jackson의 <DISTRICT 9>...인간이 외계인을 지배하다 영화소개와평론

<디스트릭트9>의 시사회를 다녀왔다.

자본주의의 재영토화의 시대에 대중영화는 어떻게 조응하는가? 궁금증 하나다. 그렇다고 <디스트릭트9>이 그런 조응을 하는 절대적인 수준의 영화는 아니다. 단지 영화라는 대중사고의 조응물은 지금의 시대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가가 궁금했다.

<디스트릭트9>은 지구에 우연히 불시착한 전염병에 걸린 외계생명체떼의 게토를 통해 지배와 착취의 한 면을 보여준다. 외계생명체는 '벌레'라고 불리며 그 호명과는 달리 고도의 지성을 갖춘 생명체다. 그런데 그 외관이 인간의 관점에서 너무 흉물스러운 이유로 '벌레'로 불리고 대우받는다. 궁긍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것들은 그것들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의 일단락들이다.

영화의 지역적 배경은 공교롭게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다. 1990년대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되고 만델라가 정권을 잡기 전에는 지구상 인종차별이 제도화되고 가장 지독한 대표적인 곳이였다. 그런 곳이 영화의 무대다. 영화는 단지 지역적 배경을 통해서 이 영화가 인종차별의 알레고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지시한다.

인종차별.. 차별의 본질은 인간에 의한 인간착취.. 이 영화라면 생명체에 의한 생명체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그 본질로 하고 있다.

지금의 지구는 어떤가? 미국과 일본에서는 진보적인 정부가 등장했다... 상대적으로..
금융위기의 파문은 자본주의의 본성이 완벽하지 않은 것을 보여졌다.
남미의 주요국가와 영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에는 좌파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모순구조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원형이라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구조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아마 이것은 인간과 사회가 존재하는 한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 같다.

<디스트릭트9>에서는 인간이 외계생명체를 지배하고 관리한다.
영화의 상상력에서 외계생명체는 벌레라고 불리고 고도이성을 갖춘 것들이고, 지구에 표류해서 이등종족으로 대우를 당한다.
지구에 표류해 있는 모든 것들의 구조에서는 차별, 지배, 착취와 같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의 하나다. 지구에 표류해 있는 것 중에 차별당하는 것은 외계생명체 하나 뿐은 아니다.

유색인종, 아랍이, 장애인, 동성연애자, 노동자농민, 특수한 지역 출신자들과 소수민족 등등

지구에서 해소되지 않는 것이 영화에서 해소되는 것은 판타지 쟝르가 거의 유일하다.
<디스트릭트9>은 판타지 영화 쟝르는 아니다. SF쟝르다.
영화가 특정한 소재를 도입할 때는 영화적 이야기 구성을 위한 경우다. 벌레가 인간에게 지배된다는 독특한 상황설정은 <디스트릭트9>에게 유일무이한 준거점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은 저항영화류와 유사하다.

아마 <디스트릭트9> 후ㅡ편이 만들어진다면 착취당하고 차별당하던 벌레들은 인티파스타를 일으킬 것이다.

<디스트릭트9>은 벌레를 또다른 특정인간군으로 돌려놓도록 만든다.

차별이 철폐된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도 또다른 형태의 차별과 억압이 시작된 설정은 지구위에서 차별과 억압, 지배와 착취는 계속 반복재현될 것임을 암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저항도 반복됨도 보여준다.

자본주의 금융질서의 위기는 생각보다 쉽게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파국을 기대하는 좌파들의 심리와는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mb정권의 지지율은 40%를 넘는다.

역시 기대는 늘 배반당한다.

기대가 실현되는 경우는 그 기대마져 과반수를 넘을 경우다.
기대도 다수결의 원리, 힘의 세계의 질서에 제약받는다.

<디스트릭트9>의 세계에서 기성의 체제에 도전하는 것은 단 세명이다. 벌레 두 명과 인간 하나다.
그런데, 소수의 투쟁은 그런 대로 본전은 건지면서 영화는 긴 여운과 함께 마무리 된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영화적인 역학 구성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것은 극히 드물다.

현실세계를 독특한 프레임으로 이해한다면 자본주의 재영토화 과정이고, 한국에서는 독재마져 등장하도록 후진하고 있다.
진보의 시대는 오랜 추억인 것 같다.
또는 그런 시대가 있었기는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향수를 짓는 것은 추억이 있어서가 아니다. 추억은 없었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배반당할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삶과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힘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에 조응되는 경우가 많다.
<디스트릭트9>이 보여주는 것은 내가 절감하는 것과 반대되도록 이상한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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