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 Smith의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iness)>을 보고 영화소개와평론

시네21 디비에는 <The pursuit of happyness>라고 돼있다.
명백한 오류지만 happy가 가지는 의미의 강건함을 생각하면 명백한 오류도 나름 의미가 있다.

이 영화는 케이블에서 봤다.
배우의발견..Will Smith..
의지가 가득한 이 배우를 새로 발견한 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다.
2007년작이다.

<인디펜던스데이(1996)>,<나쁜녀석들(1995,2003)>,<에너미오브스테이트(1998>,<맨인블랙(1997,2002)>씨리즈, <아이,로봇(2004)>,<나는 전설이다(2007)>를 보면서도 기실 이 배우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이 대단히 정치적인 배우를...그리고.. <행복을 찾아서>를 통해 윌 스미드를 새로 발견했다.

뭐 새로운 게 없나 디비를 찾아봤는데,
2009년 제40회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 이미지대상 인기배우상 수상 경력 외에는 별 새로운 것은 없었다. 비예술영화 위주의 출연경력은 그게게서 상복을 박탈한 것 같다.

<행복을 찾아서>를 보고서는 그가 주연한 영화 두편, <핸콕(2008)>,<세븐 파운즈(2009)>을 봤다.

두 편 모두 정치적 알레고리가 풍부한 것들이다.
<핸콕>의 슈퍼히어로는 명백히 오마마의 등장과 오버래핑되고,
<세븐파운즈>는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의학적 잇슈와 크게 관련된다.

<행복을 찾아서>는 보면서 잠깐 착시현상이 일어난 영화다.
영화의 제작, 개봉시점은 미국 경기가 호황을 달리던 시점이다.
그런데, 이건 왠 Unemployed??

2007년 영화가 2009년가을을 예상했을 리는 없다. 다만 영화가 얼마나 시공을 초월하는가를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영화는 성공스토리, 영웅이야기가 많다.
<행복을 찾아서>에 대해 비판적일 경우 그런 것들에 대한 비판 일반론이 적용된다.
간난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이야기는 한국에도 가끔 있다.

mb가 내세우는 것도 그런 성공스토리다.
인사청문회에도 등장하는 그런 부정적인류의 성공스토리 때문에
한국에서 성공스토리는 비하되기 일쑤다.
오죽하면, 개천에서 용난다고 할까?

<행복을 찾아서>에서 주는 논점은 두 가지다.

그 첫째는 고난과 성공의 이야기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로 통하 듯 미국인에게는 성공이라는 것이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물론, 여기에도 반론은 있다. 이를테면 고난과 성공 이야기의 이데올로기적 효과와 같은 것들이며, 미국인들이 성공스토리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것인가는 좀더 자세히 알 필요도 있다.

내가 좀더 주목한 부분은 좀 다른 측면이다. <행복을 찾아서>에서의 크리스토퍼 가드너(윌스미드)의 생생한 생활들이다. 이 영화가 논자나 팬들 사이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리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황의 뒤안길, 미국사회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보게 된 것은 수확이였다.

원래 영화라는 것은, 특히 헐리우드 영화라는 것은 비현실을 재생산하는 것을 그 매체적기반으로 한다.
재생산된 허구는 대중의 혈관에 허위의식을 아편처럼 주입시킨다.
그런 면에 대해서 체제유지를 위한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말하는 논자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전일적으로 가동되는 것은 아니며, <행복을 찾아서>에서도 성공스토리의 비현실이 관객에게 주는 가상적 안락함 외에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있다.

....
영화를 보면서 사이먼&가펑클의 메디슨스퀘어가든 라이브가 기억났다.
그 퀭함은 70년대 반전운동세대의 몰락하는 자장의 범위에 있는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행복을 찾아서>에서 가드너는 또다른 퀭함을 재연했다.
흑인빈자다.

미국에도 빈자,노숙자,실업자는 가득하고 정부도 사실 이런 문제를 해결 못한다. 
더구나 다국적기업,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이 작동하는 배경에서는 "행복을 찾아서"는 실제로 공허한 이데올로기 이상이 될 수는 없다.

영화와 현실세계는 나름 교호한다.
잘모르던 미국사회의 일부분을 영화를 통해서 본 것은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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