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죽음, <모던보이> 다시보기 --피메일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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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대상은 기표에 불과하다. 기표는 기의를 계속 미끌어진다. 탈주한다. 그렇게 우리의 자아는 붕괴한다. 미국식 Ego Psychology와는 달리 자아와 주체와 대상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많은 경우 '주연'은 남자이며, 백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는 불평등에 도전을 한다. 재현물의 가옥에 고칠점을 감히 지적한다. 달리 볼 점도 함께 발언한다. 왜? 더 나아짐과 더 올바를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편집증적 집착이 때론 바뀐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던보이>의 주연은 누굴까? 박해일? 관습적으로 여성타자까지도 주인공은 남성에게 할당한다. <모던보이>의 진짜 주연은 김혜수다. 박해일은 김혜수의 언저리이며 주변이다. 이것이 영화적 사실이다. 증거? 1) 정지우의 영화세계를 보라. <사랑니(05)>에서 보듯 정지우는 여성타자의 문제에 집착한다. 이런 경향에 충실한 최근 영화는 이윤기의 <여자 정혜(05)>, <멋진 하루(08)>가 있다. 2) 카메라의 관습적 사용을 회피하는 컷들을 기억하는지? 카메라가 감정이 있다면(사실은 그 뒤에 카메라 감독이라는 남성이 숨어있지만) 카메라는 <모던보이>에서 김혜수를 사랑하고 있다. 3) 내러티브와 클라이맥스의 중심은 누굴까? 김혜수는 자폭한다. 이 부분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김혜수가 영화를 주도적으로 이끌 지점으로 포착한다. 4)'보이'의 외부성이다. 다시 역사를 소환하면 식민지의 책임은 남성에게 돌아간다. 여성타자가 주인공으로 ****호출(interpellation)되는 이유다.

<모던보이>에서 제일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실 모두 외면하는 곳에 있다. 조난실(김혜수)의 폭탄테러다. 테러는 일반적으로  영화적 주체의 소멸과 등가관계다. 주체와 대상이 소멸하고 그 거리마져 측정되지 않는 공간에서 의미는 소각된다. 하지만 주변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무얼까?  새로운 희생제의, 인신공양의 탄생 또는 부상? 하지만 이것은 사실 반쪽짜리 물음이다. 선택이 자아를 바탕으로 하고, 자아는 배제시켜야 하는 그 무엇이다라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궁극적으로 여전히 반쪽짜리 물음이자 대답이다.

<모던보이>의 후반엔 사냥꾼 같은 외모로 배회하는 독립투사 이해명(박해일)이 등장한다. 성스러운 탄생일까? 돌아온 탕아일까? 진정 해명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영화의 플롯이 이렇게 휘어도 되나하는 생각조차 든다. 앞에 등장한 것을 다 잡아먹는 엔딩이다. 영화의 공간이 한반도며, 영화 제작, 개봉의 시간적 조건이 편집과 제작과 감독의 상상적 조건도 다 잡아먹었다는 상상을 한다. 하여튼 <모던보이>는 반쪽정도의 성취는 했다. '미지의 대륙'이 말을 시작했다는 상황이 조건충족됐기 때문이다. 주체와 타자는 자아를 소각할 때만 의미가 있다라는 내 전제를 지킨다면 <모던보이>는 미완의 성취를 한 영화다.

"그러므로 예술과학은 예술로서의 예술이 그것만으로 완벽한 만족을 주기에 충분했던 시대보다 우리시대에 훨씬 긴요한 필수품이 되었다. (헤겔의 <예술 철학(The philosophy of fine art)>중에서)"


* 글의 Originality는 제것이며 사진의 Copyright는 ㈜K&J 엔터테인먼트의 것 입니다.
** 자료 검색은NAVERDaum을 사용했습니다.
*** 최상단의 네 가지 주장은 모두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 Interpellation에 대한 위키 영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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