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 Michael for me!" 영화소개와평론

[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her lover(1990/UK/PeterGreenaway)]를 보고--음식과 복수에 관한 색다른, 그러나 때늦은 보고서

제목이 무척 긴 그래서, 터무니없는 영화를 한 편 봤다. 1990년작이며, 영국/프랑스 제작이며, 감독은 피터 그리너어웨이다.그의 또다른 작품에는 <영국식정원살인사건(1982)>이 있다. 후자는 진중권의 한겨레21 평론과 안내로 최근에 다시 주목받은바 있다. 피터 그리어웨이의 작품은 이 두 편 정도만 유명하고 다른 작품들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들은 비교적 연장관객, 그리고 지식인 관객에게 대접을 받는 편이다. 왜냐면 그 작품들이 주는 고상한 분위기는 그들의 문화적 취향에 부합하고, 그것들은 그들의 문화자본계정에 발란스를 맞춰주기 때문이다. 연장자와 지식인은 자신의 계좌에서 돈이 헛되게 빠져나가는 일을 절대하지않고, 그래서 이런류의 영화에는 되려 관객이 되곤 한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제목부터가 우선 아주 고통스럽다. 3의법칙에 익숙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외우는 것 자체가 틀리기 십상이며, 영화를 제목의 그늘아래서 보는 관객이라면 제목의 각각이 누군지 찾아내야만 영화를 보고서도 속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이 두렵다면 피해가는 재치!도 바람직하다.

피터 그리너웨이는 국내에 소개된, 그리고 만든 작품도 워낙 소량이며.개성이 아주 뚜렸하여 특징을 잡아내기가 아주 수월하다. 어떤 글에서는 그의 어느 작품을 수(數)와의 관계로 쓰기도 했다. 어쨋든~~ 그런 면보다 영상자체의 미학이 굉장히 고전적이라는 점이 원포인트 얻는다.그런데 그 원포인트는 영화적 고전미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회화적, 사진적 고전미를 쟝르내부로, 작품내부로 끌어드린 것이 미덕이자 이 미학의 특징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장중하다. 굉장히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부분의 다른 관람자도 비슷한 느낌으로 접했으리라 본다. 그런데 그런 영상형식에 불균형하게 조합되는 것은 영화의 내러티브다. 영상과 내러티브는 충돌이 빚어진다. 영상은 수려하되 내러티는 더럽고 추잡스럽다. 이러한 몽타쥬도 가능할까라는 의심을 한다.

기실 영상이 수려한 영화는 아주 많다. 그리고 이 작품도 그렇다. 나름의 아우라와 우주를 가진 작품이라서 독특하다. 그러나 감상이 없다. 싸구려 감상이 미흡하다. 유치한 정서도 고상한 감정으로 승화됐다. 좀 뚱딴지같지만 이건 박찬욱의 영화들이 그런한 것과 같은 관계다. 너무 어른서러운 영화를 너무 유치한 사람이 봐서일까? 연장자와 지식인은 보나 젊은이와 여성은 외면하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특징적으로 90년산이다. 영화가 자국성에 충실하다면 이 영화는 당대의 유럽대륙과 관계 맺었으리라!! 그때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지? 그런데 기실은 이땅의 90년도 기억하기 버겨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해볼까? 90년도의 유럽대륙은 2010년 한반도와 무슨 관계일까? 또는 시공간의 울을 넘어보는 것은 또한 어떨까? 결국 영화는 상상력 그자체라는 점이 투포인트다.

이 글의 바깥제목은 영화에 Georgina의 핵심적인 대사다. 설명을 할수도 있지만 스포일러 때문에 뺄 수도 있다. 아주 재밌는 후반반전의 리딩부다. 사실 난 이 영화의 후반반전을 먼저 알고 이 영화를 봤다. 그래도 사실 터무니없는 그 결론에 대체로 만족했다. 왜냐면 영화는 깜짝쑈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가 전달하는 정서적 충격은 어차피 편집과 검열을 거치면 가감된다.

이 정도의 것들은 90년도진행형이 아니라면 별로 충격도 아니다. 2010 지금은 현실에서 매체충격을 넘는 하이퍼리얼리티/증강현실 너무 쎄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서 뭔가 충격과 느낌을 받으려는 시도는 손쉽게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도, 그것을 본다면, 다른 것을 찾아보기 바란다. 난 그것을 요즘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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