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와 드라마, 낙원에 대하여.. --새는양날개로난다


사물의 시간은 가혹하다. 채찍같은 바람이 불면 그들은 얼기만 할 뿐이다.
인간의 시간은 기다림이다. 동기의 냉온에도 봄을 기다리며 또한 얼어붙는다.
그러면 신의 시간은?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뜻이 될지언정 기다림 너머로 향한다. 지양한다.

드라마는 시대상, 역사와 사회에 대해 거울이라고 하기엔 가혹한 운명이다. 그 보단 신을 위한 예정된 약속의 이행이리라. 그런 약속을 지킬 때는 낙원이 도래하리라는 믿음 또한 자율적으로 된다. 인간의것이기에... 여기에 드라마가 있다. 맑게 개인 가부장의 정원에서 어쩌면 낙원을 볼 수 있을까? 회의와 배신, 비난이 탈각된 자율적 공간에서 인간은 낙원을 본다.

KBS를 어떻게 생각할까? mbc가 MB氏의 것이 되려는 무렵에 KBS, 그곳을 다시 생각한다. 그곳이 알고 싶다?! 그곳은 낙원이 중재되는 곳이 되려나 보다. 굴절의 시간에서 한국방송은 프로파겐다를 위한 또다른 공간이였다. 네모상자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배덕을 봤다. 민주라는 이름으로. 이제 말하고 싶다. 낙원에 대하여..

배덕의 시간에는 덕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이 고루한 노인의 것으로 취급되리라. 그럼, 어차피 이곳은 그렇고 그런 자들의 돗대기판은 아니였습니까? 믿음이 있는 자는 어차피 믿는 길로 가는 것이 올바른 것 아닙니까? 패덕이 아니라면 당신이 민주라고 이름붙인 것에 공명하지 않는다 하여 무슨 죄입니까? 

낙원이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에 이곳에 배덕의 골이 깊다. 당신이 말하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합리화 될까요? 그것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는 거죠? 드라마하나 만들지 못하면서:) 드라마로 운을 띄었으니 드라마로 말해야 하고, 낙원을 읍조리니 낙원을 중얼거립니다. 하나 내 상상력은 당신들의 배덕으로 먼저 향합니다. 위선에 찬 독선자들!

낙원을 지향함은 누구나의 사명은 아니다. 액정에 구현된 낙원의 복제를 즐기며 소시민의 안락을 탐닉함도 배덕은 아니다. 그럼에도 비웃듯이 자신이 의사며 열사라고 믿는 독단자들에게는 욕지기가 난다. 당신이 민주의 이름으로 말한다면, 나는 낙원의 이름으로 말한다. 닥치라고.

가난한 겨울의 삭풍을 몸소 느끼는 사람에게 낙원은 없었다. 그들에게 낙원을 찾아주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당신 보고 찾으라고 할까?.. TV의 사명은 그것으로 족하다. 인간에게 낙원을 대리체험시키고 쉬고하고 놀게 하는 것... 어차피 당신의 것, 민주의 나팔수였기에 누가 새로 낙원의 나팔수라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당신이 나팔소리를 듣고, 깨어나고 잘 때, 나는 귀막고 눈가리고 얼굴 숙이고 살았네. 우리에게 시간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사물의 것이 였네. 그대의 지금 고달픔에 고소가 살짝 일어납니다. 고소합니다.... 이제 다가오는 낙원에 함께 동참하지는 안으려는지요. 그때 당신이 내게, 내 귀에 나즈막히 그렇게, 똑같은 말로 ,속삭였던 것이 잠시 기억 납니다. 

민주氏 공영방송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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