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ifferent Tears....정치적무의식과 원더걸스 --팝음악

유명한 프레드릭 제임슨은 "정치적 무의식"을 썼다. '정치'라는 것이 무의식의 형태로 결합했고, 그것의 구체화된 형태는 문화와 예술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그 일반화된 쟝르는 문학과 영화다. 그리고 그 사이공간으로 빠져나가는 예술쟝르가 '노래'다. 노래는 보통 세가지의 결합이다. 가사+곡+연주, 여기에 현대에 와서 추가된 것이 춤이다. 이런 네 가지의 수단을 동원해서 음악인은 자신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표출한다.

원더걸스는 꽤 무의식의 표출이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해석의 문제일 수 있다. 음악인A가 메세지를 전송할 때 그것이 정치적인 의지를 가진다면 그건 메세지에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대의 지형이 정치적이거나, 그런 해석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더걸스의 '노래'들은 쫌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이건 일련의 당대 대중가요의 중요한 특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꽤 정치적인 메세지를 지속하고 있고, 그건 그들의 무의식읨 문제로 환원될 수 있을 것 같다.

1)
이성.로고스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노래는 일반적으로 가사를 중시한다. 가사는 말이거나 활자며 그건 보다 강한 확정력과 분산력을 함께 가진다. 원더걸스의 금번 싱글앨범은 6곡이 들어있다. 각각 글로벌한 혼성을 만들어내는데, 우선 눈에 들어오는 점은 영어가사가 곡수의 반이상을 채운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당대 노래지형의 전선을 들어낸다. 전성기에 처한 원더걸스가 어떤 방향으로 자신들의 노래를 채워갈 지 예감시키는 지점이다.

신곡은 "2 different tears"가 있는데, 귀에 익어가는 가사로 so hate you, so love you..가 등장한다. 정서의 감정이 언표를 사용할 때 중요한 한 가지는 그것이 어떤 문장을 구성하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노래가 특히 이데올로기적 반대자 트로트.뽕짝이 느슨하고 산만하고 환상적인 정서로 어떤 허구적 인간관계.연애를 논?하고 있다면 원더걸스의 가사는 예의 예리하게 가슴을 찌른다. 칼에 찔린 심장에서는 피가 나는 듯 하다. 원더걸스는 나를 증오하고 사랑했고, 그렇게 나를 떠났다!

가사를 구사하는 것은 일종의 전략이다. 어떻게 꽂아넣을 것인가는 모든 노래와 모든 메세지의 숙제다. 원더걸스가 늘 사용하는 것은 강한 입말의 사용이다. 노래와 말의 중간에 놓인 느낌으로 랩과는 다르게 가사를 우리에게 꽂는다. 여전히 단도와 같다. 마치 님을 잃은 조선조의 여인이 자객으로 수련하고 님의 적의 방에 침입해 칼을 놓는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꽂아넣는 예리함과 힘의 느낌이 가사에서, 입말에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공감은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되새긴다.

2)
언어가 남성의 것이라면 음악은 여성의 것이라는 성구분적 인식이 있다. 그 음악이라는 것을 원더걸스의 곡들로 환원하자!.. 이런 인식의 저변에는 노래의 고삐를 쥐는 모든 것, 예를들면 제작, 작사작곡, 산업이 대부분 남성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이런 배경에서 원더걸스의 곡들은 특이한 점들이 있다.  

곡들이 남성의 것을 공통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들어난다는 점이다. 원더걸스 화성의 공간배치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존재하며 때론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무화되고 있다. 사회의 중력장이 미치지 않는 무중력 공간배치가 실행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청자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입장에서 고정적이고 고루한 입장이라면 거북해 할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음악을 평화의 도구로 볼까? 전투의 도구로 볼까? 역사적으로 음악은 평화의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전투와 전쟁의 도구로조차 수도없이 쓰였다. 성서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리고성 허물기에는 인간화성.화음은 아니지만 나발이 쓰였고 그 때의 음악과 소리는 전쟁과 전투의 수단이였다. 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적 독재자는 음악과 노래를 국민을 선동하고 자신의 이념을 선전하는 그리고 전쟁으로 넘어가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명백히 음악과 노래는 전쟁의 도구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원더걸스의 것들. 그리고 이번 싱글앨범 2 different tears는 어느 쪽일까? 음악과 노래가 전쟁과 전투의 도구와 수단으로 사용될 때 중요한 부분은 무엇보다 그 곡적 느낌들이다. 이번 원더걸스 곡들은 꽤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며 도발적인 느낌으로 소구하며 환기하고 있다. 여기에 쪼금만 다른 메세지가 입혀진다면 원더걸스의 것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될 수조차 있을 것 같다. 그 위험한 매력이 원더걸스의 매력이다.

3)
세번째는 연주다. 원더걸스를 인간적인 구성에 촛점을 둘 때 가장 원더걸스외적인 존재는 연주다. 연주는 다양한 형식으로 입혀지고 코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에 연주가 나와있지만 일반적으로 연주는 덧씌워지는 요소다. 원더걸스를 정치적무의식으로 읽는다면 이 부분에서는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가공의 신화를 도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더걸스를 단일하게 만드는 신화가 존재하다는 것을 도입해야 한다. 기계가 무의식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집단이 총체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무의식을 가진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인간들은 어떤 경우에도 함께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원더걸스 연주에서 구현되는 생각은 결국 기계도 꿈꿀 수 있는 특이한 공상!이다. 기계가 인간과 함께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원더걸스 연주에서 구현되는 미래다. 인간조차 함께 꿀 수 없는 꿈을 기계는 이미 기억시킨 '프로그래밍'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 인간의 미래는 기계이다. 인간이 인간을 소외시킬 때 기계가 인간을 구원하고 있다.

꽤 대중화된 기술과 기계는 인간의 미래를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그 선상에 원더걸스는 한표를 행사한 듯 하다. 원더걸스의 친구에는, 원더걸스의 정치가에는 기계가 이미 있었노라고 선언하는 듯 하다. 이 앨범의 제목은 2 different tears다. 원더걸스의 다양함(different)에는 기계조차 포함돼 있다. 원더걸스의 눈물(tears)에는 방전되는 전기의 눈물도 포함돼 있다.

4)
마지막은 춤이다. 원더걸스의 구성을 인간적인 것에 촛점을 둘 때 가장 원더걸스외적인 것이 연주였다면 가장 인간적인 것은 원더걸스의 춤이다. 원더걸스의 춤을 어떻게 볼까? 많은 걸그룹의 춤이 자본주의 상품화.페티쉬의 춤이라면 원더걸스의 것은 강한 경직이 느껴지고 보여진다. 원더걸스의 춤은 아주 강한 경직됨과 그로 인한 절도가 있다. 

이런 것을 읽어드릴 때 '저항'이라는 단어가 요구되는 것 같다. 일반적인 저항의 형태는 강한 자유로움과 방종을 포함한다. 창의적이라 할 만큼 저항은 자본주의적 매혹을 그대로 대리재현조차 한다. 다른 저항의 형태는 강한 경직성이다. 자신이 기계의 기계임을 선전하듯이 절도있고 규칙적으로 서로작용한다. 

일반적으로 규칙성과 반복성은 자본의 심장, 피스톤을 움직이는 핵심 매커니즘이다. 그게 마비된다면 자본은 정지한다. 매커니즘을 파괴하면 모든 기계는 정지한다. 그런 점을 원더걸스는 어떤 파장으로 선전한다...그렇다면 원더걸스는 스파이다. 자본을 타도하는 공화국X에서 파견된 여간첩들이다...^^ 

원더걸스의 춤의 규칙성과 반복성은 꽤 매혹적이다. 더구나 점점더 매혹적인 점은 몇가지 점들이 소멸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최근의 역행하는 두 추세중 하나인데, 춤이 아주 많은 소멸을 담고 있다. 상투적이며 정형적인 요소들의 확장을 통해서 어떤 것들을 파괴하는 듯 하며, 그런 것들을 아주 다르게 읽는다면 파괴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two two... 

  5)
원래 이성의 역사에서 분별있는 존재는 무의식이 없었다. 정치적 무의식은 어떤 집단적 의지처럼 취급됐다. 전혀 반대되는 다른 집단의 권력도구와 같았다. 그런데 그 역사에서 여성은 분별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집당화될 수 없는 아주 개인화된 존재였다. 이 점이 여성이 마케팅의 대상으로 소멸해 들어가는 이유며, 내가 걸그룹을 좋아하는 이유다.

만약 아직도 원더걸스가 정치적무의식으로 이번 앨범을 가공했다고 주장하려면 더 많은 자료와 근거를 노출시켜야 한다. 이건 어찌보면 신화와 같고 어찌보면 사실관계와 같은 미묘한 것들이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을 때도 많은 융거들은 그것을 정면부인했다. 그러기에는 인간 이성이 아주 많이 고양된 시대지만 그래도 무의식은 잘 포착되는 존재가 아니다. 무의식을 포착하는 아주 좋은 도구로서의 언어가 프레드릭 제임슨에 오면 쫌더 폭넓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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