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당신이 16강을 말했다면, 스포츠

스포츠는 脫민주주의적인 것인가? 역사가 멈추는 공간과 시간에서 '축구'는 홀로 독야청청할수 있나? 한국 축구의 위기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함께 생각했고, 축구의 정치성, 민주주의의 스포츠화를 함께 살폈다. 이미 시민의 스포츠로 자리잡았던 축구가 시민에게서 어떻게 유리되는가, 정권은 축구를 어떻게 이용했는가 따위를 알아봤다. 공교롭게 한국 축구의 위기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공간적 점유,시간적 공유를 같이했다. 그런 것이 우연한 만남이길 바란다.

많은 사람이 16강을 말했고 그게 예언처럼 드러맞을 때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지'한 표정였다. 축구가 비록 현실과 유리한 게임의 공간으로, 사람들의 환호와 '샤우팅'의 장소로 승격조차 됐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였다. 오래전부터 축구와 함께한 열정은 삶의 어려움에서 도피해 신선한 즐거움, 도취감을 맞보는 것이였다.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축구는 대체로 이와 비슷한 기능을 했다. 축구, 그것은 현실을 비껴나가는 향락의 슛!이다.   

1)
원래 축구는 시민의 것, 국민의 것이였다. 지난 월드컵 승리축구 역사의 저변에는 축구가 시민의 찬가와 축가를 얻었던 조건을 함께 했고, 그전 차범근, 허정무시대의 축구는 朴통 통치하의 것으로 국론의 어떤 매개장치와 같은 것이였다. 말하자면 축구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공과 실패의 현장, 그 주위에 항상 함께했다. 축구라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에너지가 몰리고 분산되는 장(場)과 같았다. 대한민국!이 성숙하고 발전할 때 축구는 함께 성숙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누란지세의 위기일때 축구는 또한 정체한다.

공교롭게 한국 축구는 2010현재 16강에서 스톱을 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축구가 자력으로 타지에서 16강에 진입했으므로 성공했다고. 글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축구의 저력을 쫌만 이해한다면 지금의 16강 진입과 그 정지는 축구의 위기로까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과연 축구가 있을 자리가 겨우 여길까?  다른 시스템아래서 축구를 했다면 2010년 축구는 훨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 같다. 이게 지금의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고 '위기'로까지 읽히는 이유다. 앞으로의 축구는 어떻게 될까?

2)
원래 축구가 갈 자리는 해외저널리즘과 도박계의 예측을 믿는다면 4강재진입정도가 맞으리라. 그 자리에 있는 게 맞는 자리고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면 그건 명백한 실패다. 물론, 선수개개인의 선전을 폄훼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축구는 단지 선수들의 집합적 역량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축구선수들의 역량만을 이유로 한다면 제일 손쉬운 방법은 거액의 선수를 영입하고 귀화시키는 방법들이 제일 좋다. 보다 건설적인 것은 축구를 좀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개도국에서의 스포츠의 역사는 정치/정권의 의도와 많은 연관이 있었다. 유명한 5공의 프로야구 출범은 당시의 대국민우민화정책과 연관이 있었고, 프로축구의 출범도 비슷한 기제로 쓰였다. 그런 맥락에서 축구는 거대하게 자랐고, 지난 정치/정권아래서 축구는 사상 최대의 성과를 냈고, 스포츠/축구산업은 거대한 이윤을 창출했다...축구는 취향의 게임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야구만 즐기고 축구를 즐기는 사람은 축구중심으로 스포츠와 세상을 본다. 그런 점에서 정치/정권의 스포츠취향은 대단히 중요하다.  

3)
 "공을 보지말고 사람을 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축구인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이 말은 축구 현실의 일단을 보여준다. 축구조차 사람이 좌우하는 상황에 대한 '비꼼'조차 느껴진다. 축구는 본질적으로 공을 가지고 하는 게임이며, 공을 어디로 차는가는 제일 중요한 과제다. 사람을 보라는 말은 맞지않다. 공을 보는게 더욱 축구다운 것이다. 언뜻 휴머니즘적 배려로조차 느껴지는 이 말은 공을 한번만 차본 사람이라면 틀렸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축구는 공을 보고, 공을 차는 게임이다. 사람만을 본다면 공은 엉뚱하게 튄다.

모순되게, 축구를 둘러싼 환경에서 선수를 포함한 모두는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스타플레이어에게 희망을 걸고 뛰어난 감독 또는 체육관료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공을 중심으로 공을 차고 공을 쫓는 사람들의 자율적인 게임으로 자리메김할 때 축구는 현재의 위기스러운 결과에서 탈출할 것 같다... 당신이 16강을 말했고, 16강에서 희망을 바라볼 때, 혹시 축구를 둘러싼 여러가지가 악화돼 버리는게 아닐까 우려한다.  

4)
지난 아르헨티나전이 있을 때 광화문엘 나갔다. 지난 월드컵 때 붉은옷을 입은 인파로 메워졌던 그 공간이 듬성듬성 이빨이 뽑힌채로 채워져있었고 도처에 경찰과 경찰버스, 경찰기동대가 배치돼 있었다. 축구를 보는 사람들의 풍경조차 요사이 바뀐 것 같았다. 광장에 모이는 대집단관람문화는 중소규모단위로 적당한 실내장소에서 맥주를 놓고 열광하는 행태로 변경됐다. 아주 많은 곳에서 이런 형태의 축구'보기'가 정착된 것 같다. 축구가 변하고 관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축구가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즐길거리가 된지 오래라, 그것을 둘러싼 문화 그리고 그것의 변경, 변화는 정말 중요한 관심사항이다. 우루과이전이 있을 때는 어느 거대쇼핑몰에서 축구를 봤다. 한층의 반정도를 차지하는 큰 공간에서 사람들이 맥주와 안주꺼리를 시켜놓고 열광하고 있었다. 지난 풍경들과는 사뭇 대조가 됐다. 축구관람의 실내화는 외지경기를 핑계로 계속되는 것 같았다. 안방과 광장의 중간에 놓인 정도에서 관람하는 문화는 이제 더더욱 일반화될 것 같다. 




애드센스(300*250중간직사각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