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후반文化에 바침...밝은 은빛진주 같은 영롱함을 위해 --자화상

누구나 90년대를 살았다. 기억은 속이고 추억은 가라앉힌다. 모르핀을 맞은 시대였을까? 분노와 두려움은 무의식으로 억지로 끌어당겨졌고 누구나 직장으로 학교로 갔다. 피곤한 세벽 출근길 지하철안...90년대후반의 초상(portrait)이다. 망막에는 맺히나 지워진 시대? 기억하나 왜곡된 시대? 어쩜 우린 허위의 거추장스러운 막아래 살았었나보다. 이름은 파도에 쓸려 지워지고, 파도는 다른 것을 불러오려나 한편 희망했다.

95년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해다. 그렇게 90년대후반은 장을 열었다. 국민의 정부가 국민의 것이 아녔던 것 처럼, 참여정부에 참여는 봉쇄되고 배제됐던 것 처럼 문민정부 또한 문민의 것이 '사실은' 아니였다. 그래서 누구나 문화로 들어갔다. 정치가 배제된 채널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였었다. 그 전통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명백하게 이어진다...90년대후반은 한반도에 핵위기, 우루과이라운드투쟁, 한총련사건가 더불어 문화가 등장했던 시대다. 아주 짧은 5년간 문화는 최고수준의 성과를 냈었고, 누구나 누렸다.

객관적 평가에서 2000년초반에 한국영화는 신지평을 열었고, 90년대초반에 대중음악은 전성기를 시작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오픈되고 글로벌화하는 여정에서 문화는 엄청난 수혜와 혜택을 받은 셈였다. 그게 정녕 혜택과 수혜인가는 論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의사(pseudo)적 상황들에 염려했고, 그건 90년대후반에서 지금껏 이어진 상황들에서 어느정도 명확해진 부분조차 있다...문화에만 한정한다면 90년대후반文化는 헌사를 바칠 여지가 있다...객관적인 것은 배제했고, 특징적인 현상 몇개를 추려봤다.

1)
90년대에 일반개봉했던 미국영화가 한편 있었다. 요즘은 케이블에서나 볼 수 있지만 당시로는 쫌 쎈쎄이셔날한 면이 있었다. 흥행성적은 중간정도며, 미국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될 때 얻는 수익과 지영도를 평균정도 얻은 영화다. <지아이제인>이다. 데미무어가 삭발한 미국 해병대원으로 등장했다. 미국문화의 90년대를 말할 때 데미무어는 배제할 수 없는 여배우며 90년대후반이면 미국적 문화현상이 바로 한국적인 것으로 이식되고 주입되던 때였다.

90년대후반의 우리사회의 중심의제는 위에서 내려온 것, 문민화(文民化)였다. 이 이상한 조어는 마치 한국사회에서 군부를 영원히 배제할 것 같은 인상을 줬다. 또 다른 의제는 세계화(世界化)였다. 이 또한 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온 것으로우루과이라운드사태로 대표되는 농업정책, IMF사태, 일련의 FTA 등의 사건으로 득과 실을 함께 보여준다. 역사에서 가정을 할 수 있다면 준비없는 저지르기가 가져올 폐해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지아이제인>은 90년대후반문화의 상징으로 비춰졌다. 90년대후반 문화성은 우리것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함께 그 반대적 기운이 함께 강했다는 점에서 이 미국영화를 그 상징적 현상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지아이제인>은 퍽 단순한 서사구조를 가졌다. 미 해병대에서 여성이 한 명의 해병대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기억에 언뜻 망치처럼 내려치는 장면도 몇 있지만 지금시점에서라면 유치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아이제인>의 이미지에는 '밝은 은빛진주 같은 영롱함'이라는 헌사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근육질 데미무어의 정신성이 무척 건강했다는 느낌이 여지껏 지속된다. 원래 곤욕스러운 현실에서 정신은 빛이 나는 법이다. 그런 점을 이 외국영화에서 읽었고 90년대후반과 문화는 외국의 이미지를 통해 외려 더욱 적나라하게 읽혔다. 모르핀의 시대! 육체와 사회가 함께 강제휴식을 당한 시대에 이 미국여성의 검게 타고 건강한 근육은 도달하고픈 장소같았다.

90년대후반은 그 이전부터 계속됐고 이후로 이어지는 '거세된' 시대의 막간극같다. 사람과 사회의 몸과 근육은 주입된 모르핀으로 최면이 걸린 상태며, 근로와 일을 지속하는 목표는 달성될 것 같았다. 문화또한 그런 모르핀의 한 가지처럼 사용됐다. 사회의 총구호가 사회의 최면걸기, 잠재우기 그러나 지속되는 일과 직장의 보장으로 합의된 듯 했다. 물론 합의는 이후 일련의 사태에서 깨어졌음이 분명했다. 역사상 거버넌스와의 합의는 항상 그랬으며 90년대후반은 쪼금 세련됐고 특별했다. 밀레니엄을 앞둔 5년간. 

2)
90년대후반 또한편의 미국영화가 개봉했다. <마빈의 방>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앳띤 미소년으로 등장했다. 이미 몇몇영화가 개봉했었으나 <타이타닉>이 개봉되기 전으로 많은 소녀팬들이 좋아할 무렵이었다. 이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에 메릴 스트립, 다이안 키튼, 로버트 드니로 등의 기라성같은 명우가 출연했고, 척도가 되는 흥행성적은 보통정도였다. 오락용 영화가 아닌 삶과 죽음, 인생의 진지한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대학생층이 많이 봤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현상은 다음해 <타이타닉>이 개봉하면서 절정이 됐다. 팬덤현상은 아직 외국배우에서나 있었고, 미소년 캐릭터에 한정된 정형화된 일련의 상황이 전개됐다. 포인트를 잡아내기 무척 어려운 문화현상 하나가 90년대후반에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팬덤현상이였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 대명사였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취향이 외부로 표현되는 데 솔직해졌다는 점이다. 좋아하거나 사랑해도 감추는 기성세대문화와 거리를 두는 젊은문화가 신세대문화란 이름으로 확연히 등장했다.

'표현'은 정말 중요한 화두였다. 그것에 곱해진 것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의 '유행'였다. 젊은세대는 자신의 취향, 기호, 선호도를 여러가지로 표현했고, 현대사에 몇번 있었던 문화변동이 격렬하게 등장했다. 대중매체와 평론가는 이 현상에 대해서 무척 성가시게 떠들었다. 자신의 의미망으로 포섭하려는 노력은 여러저변에서 일어났다. 상황의 비극적인 면은 개개인의 표현욕망과 그들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의 문화가 타협없이 대립했다는 점이다.

90년대후반문화는 이러한 대립구조가 앞으로 항구적인 구조가 됨을 예언했다. 사회위에 촘촘한 그물로 내려올 문화와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으로서의 또다른 이름, 문화가 어지럽게 얽혔다. 그 대립은 여러 형태의 사건으로 90년대후반 대중매체를 장식했다. 문화의 전유가 역동적이라고 했다면 그 내부는 '문화전쟁', '계급투쟁'이라 할만했고, 90년대후반엔 그것이 수면위로 등장했다. 이제 가시성의 장이 열린 것이다. 문화를 둘러싼 계급투쟁은 '전인미답'의 경지로 접어들었다.

이런 대립이 본격화했던데는 90년대후반을 향한 총자본 또, 그 대리인으로서의 정부/국가의 문화정책이 주요했다. 시민은 이미 획득했던 정치적, 문화적 자유의 재점유를 원했고 그들은 그것에 대한 촘촘한 그물망같은 통제를 원했다. 오렌지혁명과 같은게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 잇달았고, 어쩜 그것은 광장의 이름이 아닌 것으로 진행됐을런지 모르겠다. 하여튼 문화는 장이됐다. 개개인들이 집단화하지 않은 형태로  애정과 선호를 투사시키는 무대였고 총자본, 정부/국가와 관계에서는 대립구도라는 게 점점 명확해지는 구분으로 돼갔다.

3)
문화의 시대적 우세종은 영화와 대중음악 +티비드라마같다. 영화는 밀레니엄을 지나 전성기를 열었고, 대중음악은 쫌 이른 90년대 초엽부터 새로운 감수성의 전성기를 열었다. 티비드라마가 전성기를 연 것은 2005년이 지나 한류가 붐을 이룬 이후다. 이런 객관적 정세속에서 90년대후반은 쫌 특별했다. 문화를 여러 대립하는 세력(계급)들이 붙는 장으로 이해할 때, 90년대후반은 그 쌈이 제 궤도를 잡아가는 스타트였다.

1),2)에서 미국영화 두 편을 시도했지만 '우리'문화를 내부를 들여다 볼 때 미국문화, 미국영화는 배제할 수 없다. 임화(林和)적 이식문화론마저 도입했다면 미국문화는 우리 혈관에 강제로 이식되게 분명했으나 '결과적으로' 우리문화의 중요한 살과 뼈가 된 것조차 분명했다. 특히 영화쪽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중음악이 가사라는 매개물을 가졌고, 티비드라마가 안방이라는 일상성을 매개물로 가졌기에 민족주의적 색깔, 우리것이라는 느낌, 한글의 영토화가 분명한 반면, 영화는 탈현실화한 극장공간을 매개물을 가졌다.

90년대후반문화가 코스모폴리탄적 감수성을 지지했다라면 큰 공로는 영화쟝르가 가져야 했고,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을 지지했다라면 가장 큰 공로는 대중음악쟝르였다...90년대후반 대중음악계 기린아 한 명이 기억났다. 이승환이다. 서정적이며 감성적인 맬러디와 우리말의 느낌이 잘사는 노랫말로 젊음의 지지와 열광을 얻었던 가수다. 또한 팬덤현상이 나타날 때 주목됐던 가수로 여러 소녀층과 여성층의 지지를 얻었다.

(대중)음악을 '정서'의 예술로 이해할 때 멜러디와 노랫말 모두에서 가장 한국의 젊은이다운 것을 생산해낸 가수였다. 우리말과 우리멜러디를 바탕으로 우리의 정성과 정서를 서정적으로 잘 표현했다. 90년대후반에는 이승환 4집과 5집을 생산했고 유명한 "천일동안", "백일동안", "가족"이 포함돼 있다. 단지 정서만의 문제는 아닌게 대중음악또한 산업이며 상품이다. 그전과 그이후의 많은 대중음악산업과 사업이 기실 비즈니스 마인드에는 동떨어진 봉건적, 국가관리적 이중성에 노예상태였다면 90년대후반 이승환은 쫌 달랐다.

어쩌면 흔한 현상이지만 이승환은 지금도 콘서트를 중시한다. 카세트테입에서 cd로 넘어가면서 대중음악이 위기와 기회를 함께 얻었다면 mp3와 다운로딩의 보급은 산업을 붕괴할 수 있는 요인였다. 그런 곳에서 오래전부터 콘서트에 주목했던 음악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는 자금원(cash cow)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승황을 유니크하게 하는 요인과 이유는 그밖에도 상당히 다양하다. 독특한 외모, 외모에서 유추되는 개인적 취향, 지적이거나 여린듯한 감성구조 등..

90년대후반文化에 대해서라면 서로다른 시각이 서로다른 임펙트를 잡아낼 소지가 큰 것 같다. 그럼에도 공유되는 부분들이 아주 많을 것 같다. 단편적인 90년대후반문화의 것들을 통해 기억에서 새록새록한 그 때를 집어보았다. 밝고 영롱하며 은빛진주같다는 게 이 시절 문화에 대한 느낌이다. 꽤 주관적이며 어쩌면 누구와도 소통되지 않는 자폐의식과 같지만 원래 모든 해석과 이해의 역사는 그럲다는 생각이다. 문화는 동적인 장이며 그곳엔 갈등이 함축되 있고, 대립과 충돌이 암시되 있다는 생각은 상당히 오래동안 유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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