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활동?!'과 철학하기 필로소피

'댓글활동'이라는 묘한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옮기면 'comment activities'정도죠. 검색창을 두들겨봐도 꽤 많은 용례가 발견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의미다. 근데 쫌 묘한 함의가 들어있다는 느낌. 철학의 전통에서 집필(writing)과 실천(practice)은 서로 이항대립되는 것으로 묘한 가치체계가 함축돼 있다. 이를테면 집필을 실천의 우위에 두는 전통이다. 속류 맑시즘에서는 실천을 '노동(work)'의 연장선상에서 봐서 실천을 집필의 우위에 두는 경도된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또다른 경우도 있다. 여전히 집필을 실천의 우위로 보는데 근거다 쫌 다르다. 집필을 문필가의 경우 노동이나 실천의 다른 형식으로 보고 집필을 우위로 본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집필에 대한 전개가 실천에 종속되므로 실은 자기모순이라고 하겠다. 자신이 종속되는 것을 기초로 자신의 우위론을 전개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일반적으로는 집필을 실천의 우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전통적인 고정관념과 더불어 집필이 인간 의식의 더욱 고귀한 기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몸의 활동과 노동가치설을 존중하는 입장에 서거나 (머리를 쓰는)귀족계층에 대해서 (손을 쓰는)서민계층을 옹호하는 입장에 설 때 또는 집필을 이론(theory)으로 해석해서 실천하거나 실행하는 것을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보는 입장 따위에 설 때 실천은 집필보다 우위에 서기도 한다. 더구나 우리 계급전통의 모순점을 극복하는 맥락에서 전통적 사(士)와 문(文) 우위보다 농공상(農工商)과 무(武) 그리고 기(技), 때론 예(藝), 체육(體育)의 우위를 주장하는 입장이 더욱 설득력있고 타당해 보인다.

'댓글활동'이라는 묘한 단어에는 이러한 가치체계가 함께 개입돼 있다. 우선 댓글달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시각차이가 개입돼 있다. 아다시피 댓글은 정신적 작용과 육체적 활동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혼란스럽다. 사고의 지평을 쫌 넓히면 인간이 하는 모든 가치부가적 행위 중 정신과 육체가 함께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점이 나타난다. 결국 어느 것이 더 비중이 큰가 비교를 해야 하는데 그런 구분들이 바로 함정같다. 별로 보편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여기에 개입된 것의 진정함은 집필/실천을 구분하는 전통적 가치체계의 맥락에서다. 댓글을 '집필(writing)로 파악하는 것이다. 거기에 결부되어 '활동(activity)은 함께 등장했다. 여기서의 활동은 의미로 보다는 '어감'으로 느끼는 게 바람직하다. 구체적 활동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집필자(writer)의 '목적의식성'이 개입됐다는 점을 '활동'이라는 단어로 느껴지게 한다. '활동'은 다만 몸의 움직임이 아닌 의식이 개입됐다는 '신호'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다수 사고의 공통점이 엿보인다.

대다수는 인간의식을 다른 것에 대해서 우월한 것으로 보고 '단지 '댓글달기'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을 '댓글활동'으로 창조해냈다. 그런데 사실은 문제가 쫌 있다. 인간 의식과 정신의 우월성을 입증한 것은 옳다고 하더라도 철학사의 전통적 이항체계에서 '댓글'을 쓰거나 다는 행위가 '집필'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건 상당히 이상한 문제다. 전통적 사고에서 집필을 하는 것은 여러가지다, 시인이 시를 쓰거나 소설가가 소설을 쓰거나 학자가 논문을 쓰거나 하는 것들이 집필이다.


더욱 엄격하게 전개한다면 '책'을 준비하는 것이 집필이다. 만약 집필을 더욱 폭넓게 이해했다면 개인이 일기를 쓰거나 특정 쟝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직업적 글쓰기와 일반적 글쓰기가 혼재해 있다. 인터넷시대는 블로그 포스팅이 일반적이다. 이걸 집필로 볼까? 그렇다면 트윗은 집필일까? 그런 맥락에서 댓글쓰기가 집필일까? 집요하게 집중하는 첫째는 일반적인 글의 분량이다. 글의 분량은 포스팅>트윗(140자)>댓글로 봐야 할 것 같다. 둘째는 퍼블리싱을 한다는 가정하에 편집의 가능성이다.

주제를 중심으로 편집한다는 가정하에 블로그는 편집이 가능할 것 같고 트윗과 댓글은 힘들 것 같다. 차이가 있는 게 트윗은 아주 많은 갯수라도 체계적으로 모을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다. 댓글은 보통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요즘 일부 포털과 매체는 자신의 댓글을 일목요연하게 모으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끌어모은다고 해도 중심적 주제로 일관되게 엮어내는 게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마지막은 집필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다. 귀찮고 성가신 악플이 많은 것 처럼 대부분의 댓글은 '즉흥적'이다. 댓글을 자주 쓰는 이라도 자신의 공간으로서 블로그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게 일반적이다. 자신의 '집필' 중 진짜로 얼굴과 같은 것은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하고 모으는 게 일반적이다. 트윗은 즉흥과 의식성의 중간정도 같다. 블로그 포스팅은 어쨋던 뭔가를 '집필'한다는 마음가짐과 자세로 하는게 일반적이다. 아주 짧거나 상업적이거나 해도 마음가짐과 자세가 '집필'에 가깝다.

'댓글활동'은 이런 맥락에서 집필로 보기 어렵다. '댓글활동'을 존중해야 할 이유는 사실 딱 한가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한다는 점이다. 여러 원칙 중에 대다수가 하거나 믿는 것은 인정하는 게 있다. '댓글활동'은 대다수가 하므로 여러 폐단에도 불구하고 인정되고 존중된다. 대다수가 한다는 점이 가치를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에 '댓글달기'가 아닌 '댓글활동'과 같은 고상한 언어가 등장한 것이다. '댓글활동'! 고상하며 우아한 언어다.

동일한 사상(事想)이지만 지정하는 말을 여럿인 경우가 많다. 대개는 그 중 하나만 적확한 것이며 나머지는 여러 이유에 의해서 개발됐다고 보는 게 옳다. 난 '댓글달기'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은 '댓글활동'을 자신이 하는 것을 가리키는 핵심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 언어는 뜻이지만 느낌이기도 하다. 뜻도 그렇지만 느낌은 더욱 그렇다. '댓글활동'이 뜻하는 바 부정확함과 더구나 그 표현이 주는 느낌의 이상함, 거북스러움은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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