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DOC...나 이런 사람李與...세태와 사회에 대한 유감 --팝음악

프로이트의 용어에 '거세공포증'이 있다. 어떤 검색에서 "거세공포증은, 아버지가 실제로 아이에게 어머니에 대한 욕망의 단념을 요구하며 거세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어느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에게 그와 같은 위협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별다른 의도 없이 한 말 한마디, 혹은 어떤 일상적인 사건 하나가 어린 아이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으며, 이러한 인상이 환상 속에서 부풀려지고 변형되어 ‘진정한 거세위협의 체험’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거세공포증'은 문화와 예술에 만연할 수 있다. 보통 반사회적 욕설과 외설적/직설적 가사로 특징되는 랩, 힙합, 댄스뮤직을 듣고 보다 보면 그 곳은 거세공포증을 둘러싼 충돌과 공포의 장소였다. '하늘의 눈(eye in the sky)'이 세상을 전지전능하게 내려보며 피조물은 그 장소에서 욕망을 욕망한다는 구도는 꽤 오래된 도식이다. 이러한 체현은 대중음악의 2차의미론적 구조에 항상 있었다. 대중음악은 항상 당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또는 권력체계에 정확하게 조응했다. 그런게 대중음악의 본질이다.

음악을 통해 구체화되는 '거세공포증'의 다양한 양식은 프로이트가 속했던 융거치하 프로이센만의 것은 아니였다. 다양한 형태의 음악은 설혹 클래식이라도 이러한 조응을 피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기술관계가 미학에 진지하게 개입됨에 따라서 되여 심화됐다. 현대의 대중음악은 쟝르를 막론하고 자본주의/시장의 일반적 '거세공포기계'를 현시하며 그 괴물은 인간 무의식의 심층에서 쫌더 낮은 층위로 부상한다. 수면위로 빼꼼히 올라온 잠망경과 팔루스(phalus)를 잇는 은유기계들.

디제이디오씨는 말하자면 사고뭉치였다. 대중문화면을 장식한 그들의 기록과 역사는 그러한 점철이였나 보다. 그러한 것은 어쩜 다르게 이해되며 전설마져 만들어낸다. 어떤 평가는 "2000년에 발표한 5집 DOC Blues에 수록된 "L.I.E."와 "포조리"에는 가사에 자신들을 모욕하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과 일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찰을 향한 욕설과 비속어가 들어 있어 5집에 "연소자 청취 불가"라는 경고 문구가 붙으며 발매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구성된 세상에서 무얼 생각했을까? 역시 뮤지션을 구체적으로 평가했다면 남는 것은 대중문화면이 아닌 작품세계 밖에 없을 것 같다. 같은 평가에서 같은 음반에 대해 "2000년 출시된 5집  DOC Blues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명반으로 손꼽히며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65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고 했다. 이러한 분열적 찬반 속에 디제이디오씨는 10년간 음반생산을 중단했고 연예프로 게스트와 '무수익'프로듀서로 지냈다.

케이블에서 어떤 저명한 대중음악 작곡가가 "댄스음악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쟝르예요"라고 했다. 튀어나온 배 만큼이나 팬더눈두덩같은 아이섀도우 만큼이나 정신머리없는 발언이라 봤다. 댄스음악은 적확하게 자본주의적 음악양식에 조응하는 쟝르며 연습생에게 물어봤어도 그런 이상한 발언은 하지 않는다. 이하늘(이근배)조차 그러한 저급한 발언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댄스음악이라 할 때 샘플링과 부분인용/변형이 음악의 주요한 방법론이고 그런 걸 진보적이라하면 단순히 '좋은' 음악에 대한 미수여구같다. 

요즘 [나 이런 사람이야]는 혼성쟝르로 봐야 할 것 같다. 댄스음악에 랩이 결합됐고 힙합적요소도 결합돼 있다. '댄스음악'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데올로기적 중핵감은 음악을 분류하고 구별짓고 구획지으며 뭔가 함정에 빠트린다는 감이 있다. 음악에 쟝르를 부가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쟝르를 구분해야 음악생산과 소비에 보다 큰 효율성과 안정성이 동시에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쟝르구분은 꽤나 전통적인 습관이다. 꽤 익숙하나 불편한 습관.

[나 이런 사람이야]는 진정 비판적인 가사가 살아있다. 댄스음악의 한계인 노랫말을 랩으로 극복했다. 사회비판적인 노래가 메이저 음악시장과 방송망을 타는게 꽤 어려운 상황에 시의적절한 가사로 표현했다. '야'에서 모음하나만 이동시키면 또다른 의미가 등장하는 그러한 세상에서 진정 지적해야 할 사람들을 꽤 다양하며 리얼한 랩으로 지적했다. 아쉬운 점은 숨은 '2%'를 더 지적 못했다는 점이다. 숨은 '2%'에 포함되는 여러 층위의 사람들을 모두 지적못해서 노래의 '충만성'에 흠결이 갔다는 점이다. 

영어랩의 반복성은 마치 누군가에 대한 욕처럼 들려왔다. '(SHAKE IT)몸을 흔들어라'는 저속한 명령은 시대상의 요구를 함축한 것은 아닐까? 살거나 죽기위해서 치열하게 몸을 굴릴 것을 지적하고 있다. '노무새끼'라는 저속한 욕이 한때 보수파들 사이에 엄청 유행했다면 'SHAKE IT'은 공공연한 방송망과 쑈프로를 타며 '개네들'의 몸과 혼을 또한 저속하게 흔들어주지 않았을까? 흔들리는 TV속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 굴리거나 흔들어놓거나 돌려버릴 '이노무셔키'들이 떠올랐다. 

문제는 랩구절의 가치함축성과 축약성이다. 랩을 쓴 사람이 누구이던 상당함 함축(implications)을 내포(connotations)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직설적이며 즉각적인 구절로 일정한 효과를 생산하려한 것 같다. 랩언어가 '고급언어'로 승화될 때 함축적인 언언어의 즐거움은 필요했다. 역시 또다른 문제는 항상 있어왔다. 암호화되어 거의 누구도 풀지않거나 관심갖지 않는다는 점. 누군가에게 자의적으로 해석될 때 상당한 리스크(risks)를 껴안아야한다는 점.

즉각적이며 직설적인 예술언어에 대한 요청은 상당히 동시대적이다. 또한 일반적이다. 랩이 상업음악의 주류임을 생각하면 대중과 젊은세대의 문화적전유를 바로 읽어야 하므로 이러한 것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언듯 남는 아쉬움. ? 다른 곡을 알면 또다른 이해를 알게될까? 감수성과 문화적전유를 위한 요청이 함께 등장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다소 남긴다. 여운같은게 남는게 좋지 않을까? 아닐수도 있지만 하여튼, 디제이디오씨의 한 노래를 전격적으로 분석해봤다. 


* [DJ DOC_나 이런사람이야] 가사

마이크 싸가지 테스트 원투원투
니네 내가 누군지 모르나 본데
나 이런 사람이야
 
Shake it (Shake) Shake it yo (Shake) Shake it
Shake it (Shake) Shake it yo everybody~
Shake it (Shake) Shake it yo (Shake) Shake it
Shake it (Shake) Shake it yo everybody~
 
주둥이만 살아 뻐꾸기만 늘어가
무리야 인생이 술이야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 일 벌렸다 하면 사고
괜찮아 나니까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달아 버리는 나니까
손발 다 써도 안되면 깨물어버리는 나니까
대박 나든 쪽박 차든 쏠리는 대로 사니까
아닌 걸 보고 아니라고 하니까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쩔래
나 이런 사람이야
학벌이 어디더라
돈벌이 얼마더라
앵벌이 이런 개나리 진달래 십장생
연봉이 내 명함이고
차가 내 존함이고
집이 내 성함이고 참 유감이고
괜찮아 나니까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달아 버리는 나니까
손발 다 써도 안되면 깨물어버리는 나니까
대박 나든 쪽박 차든 쏠리는 대로 사니까
아닌 걸 보고 아니라고 하니까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쩔래
나 이런 사람이야
요람에서 무덤까지 말단에서 사장까지
한 많은 남자 한국놈 한다면 한다 한국놈
의사 약사 변호사 검사 판사
차라리 그 정성으로 MP3 다운받지 말고 판사
요람에서 무덤까지 말단에서 사장까지
한 많은 남자 한국놈 한다면 한다 한국놈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쩔래
나 이런 사람이야
Shake it (Shake) Shake it yo (Shake) Shake it
Shake it (Shake) Shake it yo everybody~
Shake it (Shake) Shake it yo (Shake) Shake it
Shake it (Shake) Shake it yo ever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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