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게 맛을 알어?!"...광고와 사회공학의 사이 --방통컨버젼스와광고

전설적인 광고캠페인이 있었다. 2002년 롯데리아 크랩버거를 광고했던 대홍기획 제작의 '노인과 바다'광고다. 등장인물이였던 '신구'의 유명한 TV카피 "니들이 게 맛을 알어?"는 장안의 화제이자 시정잡배들의 유행어로 회자됐다. 탐욕스럽게 풀리고 지친 눈의 노인은 다가온 선원들에게 외친다. "니들이 게 맛을 알어?" 원작은 유명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고기를 낚으로 홀로 바다로 나갔던 노인은 거대한 다랑어를 천수만고끝에 잡는다.
 
표류하며 고생하며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상어떼가 습격하여 유일한 성과인 거대한 다랑어를 다 뜯어먹는다. 노인은 보트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꾼다. 꿈에서 아프리카 초원엔 아름다운 사자 한 마리가 등장했다. 노인은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오고 마을 주민들에게 다랑어와 꿈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이런 원작은 꽤 많은 치환과정을 거쳐 TV광고로 둔갑했었다. 정작 원작의 가장 아우라가 넘치는 부분들은 다 증발해버렸다. 1)아프리카 사자 꿈은 노인의 탐욕스럽게 풀린 눈으로 치환됐다 2)상어와의 싸움은 사라졌다 

3)상어에 뜯겨 뼈만남은 다랑어는 게의 '철갑'껍데기로 대체됐다 4)반겨준 마을주민들은 해적같은 선원들로 대체됐다 5)꿈과 모험을 말하기는 "니들은 게 맛을 알어?" 한마디 '초절정컴비네이션정수리에발톱꼽기'로 대체됐다. 이런 시츄에이션에 맞는 한 마디는 '돌아버리겠다'? 광고는 원래 이렇다 말들하지만  2002년 이무렵은 광고가 치명적으로 변질되는 전환점이였다. 2002년은 한-일 월드컵이 있던 해다. 문민정부의 세계화 정책 이후 제2의 세계화가 추진된 것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이미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신자유주의'는 논란을 빚었지만 한-일월드컵은 다 찬동하는 분위기였다. 더구나 월드컵에서 연출된 길거리관전방식은 뭔가 새로운 문화의 스타트로 세계의 주목을 얻었다. 이미 금모우기운동 때부터 나오던 '국가동원'시각을 말했다면 철모르는 사람으로 몰렸다. 한편 애국주의 물결로 이해했던 중간계급(중산층)의 시각은 굉장한 일반화를 얻었고 지금껏 월드컵과 월드컵관전, 응원을 이해하는 중요한 축이 된다. 

'중간계급'였다. 중간계급의 취향과 문화는 사회화되면서 주류화되었다. 전통적으로 위에서 일방통행으로 내려오던가 간헐적으로 밑에서 위로 솟구치던 것이 이젠 중핵을 중심으로 좌우상하 입체적으로 쫙 퍼졌다. 처음처럼 등장했던 게 '취향'이였다. 이젠 문화를 넘어서 '취향'이 정말 중요해졌다. 노인은 말했다. "니들은 게 맛을 알어?!"라고. 대사라고 할만한 것은 이게 전부였다. 게를 말하고자 먹고프다고 말하는게 아니였다. 여기서 '게'는 대리물이다. 게는 사실 '게(crab)'를 말하는게 아니였다. 

1) 선원은 여러 명이다. 노인은 한 명. 이 한 명은 광고를 보는 한 사람의 개체이다. 선원은 무수한 다른 존재들을 말한다. 노인은 보는 한 사람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게 결정적으로 필요하다. 단지 게맛이 아니라 게맛을 지니고 있는 상품을 의미한다. 니들은 게맛을 모른다는 것은 단지 모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품을 맛보지 않으면 게맛을 모르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배타적인 위치를 공고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돈을 요구한다 (2002년10월24일오마이기사중에서)

2)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는 현대사회에서 지배구조가 어떻게 유지되고 재생산되는지, 피지배계급이 어떻게 그들의 지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설명을 기존의 경제적 측면("계급")을 넘어서 문화에 관한 분석을 중심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부르디외는 객관적인 계급구조와 행위자들의 취향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발견해 낸다. 이 부분에서 부르디외의 독특한 점이라고 한다면, 구조와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구조로서 '아비투스(habitus)'라는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인 점이다. 이것은 기존의 이론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구조와 행위의 딜레마를 넘어서려는 시도이며 이를 통해서 부르디외는 어떻게 문화가 계급과 지위의 차이들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블로그책소개에서 : 부르디외<구별짓기>)

2002년의 시공간을 중간계급의 시공간으로 이해한다면 '게'는 사실 중간계급에 대한 대리기표다. 공리(axiom)대로 기표는 기의 위를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그리고 때론 만나며 정박된다. 어차피 완전하게 정박되지 않는다고 이해한다면 '게'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것들이 산출될 것이다. 명확해진다고 하더라도 '찰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층위(layers)라는 걸 집단이나 카테고리화로 이해했다면 의미가 피폐해지는 것은 심각했다.

다시 중간계급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중간계급이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이해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취향'이다. 언어취향과 음식취향, 성취향. 이렇게 적는다면 부분적이나 명확해진다. 그러한 취향구조가 복합적으로 운동하며 사회와 계급구조, 행위구조와 결합되고 확산된다. 이게 일반적인 것이 될지는 모호했다. 확실한 것은 2002년 시공간에도 논란이 일고 사회문제화됐던 게 아주 많았다는 점이다. 단지 '게 맛'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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