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유] 國土를보는시점과 '메이저톰(MajorTom)' 을위한정치적연상 자연과환경

정확하게 말하면 국토는 아니다. 지구(Planet earth)다. 지구로 귀환하길 거절한, 록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창조한 우주비행사 '톰 소령'이 본 것은 지구였다. 지상 관제소(Groun Control)는 회로파괴를 핑계삼고 묻지만("Your circuit's dead, there's something wrong?") 톰 소령은 대답거절한다. 독백처럼 말할 뿐("Here am I floating round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국토란 그런 것이다. 환영과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우주의 미아로 있을지언정 '자기(ego)'의 시야에 놓이는 것을 포기못하는 톰 소령의 과대망상은 삼가 비슷한데가 많다. 누구도 있지못할 독점적 시야를 장악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찬양한다. 함께 공유하기 어려운 것의 '유일성'을. 권력은 그런 것이다. 독특하고 지배적인 위치에 놓이며 누리게 된 거세되지 않은 '숫소'의 시점. 감히 난공불락의 초월성조차 느껴진다.

구글이 제공했던 구글맵(Google Maps)은 일대 문화충격(culture shock)을 가했다. 좁은 한반도를 인공위성이 재생한 시점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미수복영토' 북한에 대해 재생됐던 조선일보 위의 영변지도와 같은게 주었던 충격이 이제는 생각보다 손쉽게 재연됐다. 한술더뜬 것은 구글맵은 좀더 확대된 배율로 줌을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국토를 본다는 환영과 환상이 일어난다. 감히 기하학적으로 구성되고 우주기술로 구현된 환영과 환상을 모두 집단체험하는 시대다.

다음 로드뷰(Roadviews)는 증강현실(AR : Augmented Reality)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한 분야로 실제 환경에 가상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하여 원래의 환경에 존재하는 사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컴퓨터그래픽 기법이다"고 위키는 정의했다. 국토에 대해서 도시에 대해서 새로운 정의가 형성되며 새로운 '인공시점'이 도입되는 길목이다. 현실이 정보 또는 가상사물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시점이 재상영된다. 이제 국토는 극장이 됐다고 할 수 있다. 3D도 가능할 것 같다.

"물리적 공간에 컴퓨팅 파워를 가진 정보화된 인공물(information artefacts)이 가득 채워지게 되면 물리적 공간의 성격 자체가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단순히 게임과 같은 분야에만 한정된 적용이 가능한 기존 가상 현실과 달리 다양한 현실 환경에 응용이 가능하다"고 위키는 설명했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국토와 연결되는 미래엔 단순한 디스플레이 기술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지식정보사회의 한켠엔 보(堡)와 덤프트럭 삽이 함께 배치돼 있다.
 
지배의 시점과 시선이 전체적이며 심지어 초현실적이기조차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가깝게는 극장영화의 서커스에 가까운 스턴트컷을 지휘하는 감독(directer)의 시점부터 국토의 곳곳에 구글맵 로드뷰 인공위성 그리고 보가 함께 배치되도록 독려하는 또다른 시점까지. 만일 누군가 메이저 톰(Major Tom)이 되었다면 모든 다른 것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단절하려 할 만 하다. 전략지도와 모형, 잠자리의 눈같은 수많은 모니터 또는 거대기획과 서사로 요약된 보고서를 보면서도 밤잠을 설칠 것 같다.

그러한 부스러기가 이젠 우리에게조차 떨어진 것 같다. 손바닥 위 모바일의 액정, 거실의 PDP/LCD, 아바타의 수려한 3D영상, 서울스퀘어 벽면의 미디어아트, 상공의 시선을 분할하는 불꽃놀이를 통해 지배만이 누렸던 독점적 시점 그 환희를 함게 누리고 즐기게 됐다. 84년 KBS를 통해 송출됐던 백남준의 위대한 인공위성쑈 <굿모닝미스터오웰> 이후 전면적 규모로 감각쾌락이 실천되는 것은 요즘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길한 이유는?
 
시각장(視覺場)의 역사가 주는 경고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자본주의를 성숙시켰고 그 과실은 지배 과두제의 리더십에서부터 평범한 다중에게까지 수혜적인 형태로 꾸준히 트리클다운(trickle-down)했다. 다중은 시각장의 규모와 범위가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이 감각쾌락을 충실히 즐겼다. 익숙해지는 관계와 더불어 인류사는 변천했다 할 수 있다. 때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게 있었던 것 같다. 자본주의적 논리에 충실했다면 누린 혜택엔 어떤 형식으로건 비용이 부가됐고 비용은 항상 과분했다.

세상의 후경과 전경으로 배치된 수많은 시각장의 배치속에서 메이저 톰을 위해서 대신 꿈꿔줬다. 지구를 국토을 보는 시각의 열락(悅樂)에 취해 지상관제소와의 단절되며 우주의 미아로 사라져가는 메이저 톰은 잠조차 들지 않았다. 주관적 우주의 성스러움은 모두 함께 꾸는 꿈이었고 거세되지 않은 '숫소'조차 함께 꾸는 꿈이었음에 메이저 톰은 잠과 꿈을 버리며 도취되었던 것이다. 그 꿈이 지독한 흉몽이 될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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