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블렛>, 언제나 프랑스처럼~~~~ 영화소개와평론

지난 10월6일 CGV에서 <22블렛> 블로거시사회가 있었다. 재밌게 봤고 열띤 분위가라 좋았다. 영화는 시민들의 관심을 조절할테고 시민들의 무딘 감수성에 통렬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불행히도 그정도는 아니였다. <22블렛>을 두고 명작이라느니 걸작이라느니 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잘 만들어진 오락/흥행영화며 독특한 점은 그런 영화가 미국영화가 아닌 프랑스제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프랑스제라는 원산지표시가 의미하는 바는 누구나 아리라 생각.

이 영화는 오늘쯤 15회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패션 부문에서 상영된다는 보도가 있었고 예매시작 단 몇분만에 매진이 돼 화제였다. 또한 여러 영화복합관 설문조사에서 관객들이 보고싶은 영화에 뽑혔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쯤되면 짐작되리라 생각했다. 어떤 영화인지. 원래 원산지표시 프랑스의 영화는 '예술영화', '혁명영화'를 의미했었다. 적어도 각국 영화산업이 무너지기 전에는. 그러면서 높은 흥행성조차 함께했다. 지금 프랑스 영화는 옛 영광을 잃었음을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관철되는게 있다. 그것을 알고 싶었다. 

첫번째 핵심은 '거짓감정'에 대한 것이다. 영화가 주는 정서는 본질적으로 허구며 '동일시'와 '감정이입'을 근거로 증폭된 게 영화의 본질이다. 당신은 영화를 보며 눈물흘리지 않았던가? 영화보며 우울해 하거나 들뜰 수 있다. 또는 굉장히 고양될 수 있다. 그밖에 여러 감정들. 그런 것에 대해서 '거짓감정'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고도로 고안(device)된 플랫폼(platform)일수있다. 영화를 보는 누군든 나만의 세계로 창이 열리고 몰두하는 경험을 한다. 중요한건 그게 고도로 설계되고 고안된 플랫폼위의 세상이라는 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거짓감정'이 거짓이라는 이유로 분노할 순 없을 것이다. 거짓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양태의 것이라는 해석조차 할만한다. 같은 맥락으로 '거짓감정'에 이끌려 울고 웃었다고 죄책감가질 이유도 없다. 영화의 본성이 그것과 관계됐다고 알면 그뿐이다. 영화에서 레옹으로 친숙한 마테이(장르노)는 틈틈히 오페라음악을 듣고 감상한다. 그리고 그 체험은 마테이가 '삶'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고귀한 체험같다. 물론 고귀한 체험의 결과는 '복수', '살인'과 같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순 없는 순간들이다.

두번째 핵심은 '정치적은유'의 문제다. 프랑스사회를 가로지르는 '사르코지폭풍'은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역사적 화해와 타협의 은유조차 만들어내게 한 것 같다. 그렇다고 감독 리샤르베리와 제작자 뤽베송이 '프랑스사회' 최대 정치적 문제아이자 대통령 니콜라스 샤르코지에 반대했고 그래서 이번 영화를 찍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본질적으로 확인되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영화의 내부에 정치적은유로 볼만한 '마블링'이 촘촘히 박혀있다는 점이다. 정작 샤르코지는 영화의 끝부분 경찰서장방 초상화 한장으로만 처리되지만

영화를 탈정치적으로 보는 견해는 꽤 일반적이다. 또한 영화를 정치와 유대한 '매체'로 보는 견해또한 막강하다. 당신은 어느쪽인지 궁금했다. 난 항상 후자에 가깝고 그럴만한 걸 찾는 편이다. 애초에 영화를 고를 때도 그렇지 않은 영화는 덜 보게된다. 한국영화 '하녀'를 보셨는지? 리메이크 원작 김기영 감독의 '하녀'부터 전혀다른 정치적 색깔이 돈독하다는 평판이다. <22블렛>에 대해서 보편적 규정짓기는 천상 범죄액션느와르같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무화되고 탈영토화된 '황무지'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세번째 핵심은 내가 '프랑스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다. 지금은 프랑스영화를 일년에 한편 보기가 힘들게 됐다. 적극적이지 않다면 내리 2~3년 프랑스영화 못보고 가기 싶다. 올 하반기 우리 개봉관에 방화/미국영화를 제외하곤 거의 전멸이다. 일본영화 <골든슬럼버>정도만 기억난다. 파괴된 '종다양성의 영화생태계'회복을 간절히 염원한다. 한국 영화계는 '독립/인디영화'가 들썩되는 조짐이다. 회의적일수밖에 없는건 배급과 관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수 있을까하는 점이며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려워지는가 하는 점이다.

'프랑스영화'에서 뤽베송이 <그랑블루>, <레옹>, <니키타>, <제5원소>, <택시>를 만들며 일정한 '장'을 만들어낸 것 같다. 무너진 산업이 일부 재건하려 들썩된 것 같다. 굉장히 미국영화적인 요소를 도입했고 프랑스영화의 고유성에 위배됐었다. 프랑스영화를 추억하는 사람에게 <22블렛>은 그런 맥락으로 보일 것 같다. 특히 영화사적 혁명이였던 '누벨바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럴 것 같다. 내가 '프랑스영화'를 지지할 때는 결과로서 나타난 모든 '프랑스영화'를 다 포괄해야 할 것 같다. 어떤 고유성 위배와  같은게 보이지만 내겐 여전히 프랑스영화다. 미화시키면 영화적쇄신으로 본다.

애초 '페이스북'에 포스팅 컨셉만 잡아둘 때 생각했던건 추가로 가제할 생각였다. 근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22블렛>을 중심으로 세 가지 얘기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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