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바다 위 하얀 조가비__'Innisfree' --방통컨버젼스와광고

**처놓은지 쫌 됐다. 까먹고 있었는데 그만 내보내야하나? 실례일까? 정의일까? 정의가 대새라 정의를 따른다. 물론 이게 포스팅이 되도 내게 크게 정의를 구현할 권한은 적다. 부담스럽게 얼마나 큰 정의를 구현하려나 싶다. 다만 그때 그때 생각났던걸 지적할뿐. 아무래도 정의보단 실례를 더 생각하는 세대다. 그런 세대가 속한게 또한 그렇다는거, 정의보단 실례를 더욱 생각한다는거 또한 그렇다. 보편적 정의를 운운한 듯한 그책또한 누군가의 정의로 떨어진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저열한 브랜드가 하나 있다. 저열하다면 실례일까? 저열하고 무지(無知)하다는 인상이 역력하다. 다름아닌 '이니스프리'다. 이렇게 한글로 써놓고보면 기억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태평양화장품의 울트라메트로섹슈얼 브랜드 'innisfee'를 말하는 것이다.  세계화 이전이였다면 '이니스프리'는 고교 국어교과서에 등장하는 영시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를 떠올리게 했을지 모른다.

기실은 이것조차 쫌 문제가 있다. 예이츠 영시의 주옥같은 단어를 빌린 것은 '무단도용'은 아닐까? 최소한 '존중'이 필요한 이유다. '무슥한' 자본가, '무슥한' 마케터에게 한마디 일침을 놓고 싶은 이유다. 존중과 예의에 대해서 한마디 놓고 싶은 부분이다. 이렇게 쉽게 남의 언어를 '상업화'해서는 안된다. 난 아직 영국 예이츠집안에 저작권을 이유로 돈을 내놨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태평양은 '이니스프리'점포의 점두에 연두색 소문자 'innisfee'의 간판을 걸고 있다. 글자체는 쫌 세련됐다는 느김이 들게 만든 느낌이 역력하다. 소녀와 여성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이리라. 이 간판이 무척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느낌을 줬다면 분명 매출액증대와 브랜드이미지 개선에 보탬이 됐으리니 말이다. 매출액 이미지개선.

근데 이 간판의 뜻은 한번 새겨봤는지 묻고 싶다. 표현의 원래 뜻에 대해서 알고 싶은가 묻고싶다. 'innisfree'를 세 개의 단어로 파자하면 'inn is free'가 된다. 앞에 관사(the/a)가 빠진걸 감안해도 '여인숙은 공짜다'라는 뜻이 된다. 'free'는 '자유로운/한가한'의 뜻과 함께 '공짜의/무료의'의 뜻이 있다. 대략난감한 이름이여.

'이니스피리'가 숙박업종이 아님을 생각하면 물론 '이니스프리'에서 공짜인 것은 거의 없다. 화장품찌라지('business letter'라고도 부른다)와 가끔 이벤트하는 화장솜을 제외하면 공짜인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니스프리'는 'innisfee'라고 쓰여있다. 가끔 '생각많은' 외국인이 한번씩 들렀다가 '진정' 난감한 표정을 짓고 퇴장했다. 그때마다 점원은 얼굴이 빨게졌다. 난감~~

혹시 아일랜드의 역사를 아시나요? 예이츠는 원래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이였다. 19세기후반부터 20세기초반까지 생존하며 자기 민족의 문제와 독립에 대해 시로서 말했던 시인이다. 물론 '이니스프리의 호도'도 그런 역사적 맥락의 시다. 시에서 '이니스프리(Innisfree)'는 꽤 정교하게 고안된 시어다. '여인숙(inn)'이 지금의 '러브호텔'과 다름은 물론이다.

그런 맥락에서 상호 'innisfree'를 다른식으로 파자해봤다. 'in is free'다. 'inn'은 발음이 같은 다른 품사의 단어 'in'으로 바뀐다. 이 도치구조의 맥락에서 '안에 한가해요~~'쯤이 되는 것 같다. 부사어를 문두로 보내면 도치가 일어나고 'free'는 보어가 아닌 주어로 둔갑한다. 물론 형용사는 주어가 될 수 없다. 이 구조에서 'free' 뒤에는 특정한 명사가 숨어있는 것으로 본다.

주된 소비자로서 '여성'을 어떻게 '만만하게' 보는가? 또는 일하는 계급으로서 '점원(staff)'을 어떻게 '졸'로 보는가?하는 억견조차 가지게 되는 부분들이다. 물론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여성은 유한계급으로 즉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 아버지에 '부속'되어 자신의 '존재감'과 '신분/지위'를 표상하며 분해되어 가기도 했다. 그러한 맥락으로 읽는 '마케팅'은 너무 잔혹하다.

통합적으로 고려할 때 'innisfree'는 부적절하다. 불쾌한 의미론이 브랜딩 또는 마케팅과 결함을 가진채 결합해 탄생을 시키는 것은 기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또한 특정 기업의 것들은 이런 측면에서 기업사의 전반이 마치 불쾌한 부적절성의 '종합선물세트'같다. 차이가 난다면 세계화 연간의 전후다. 부적절성이 단지 국가성의 좁은 울을 넘어 '세계로 미래로' 뻗어나간다는 점이다.

몇몇 브랜드가 있다. 브랜딩과 마케팅에도 성격이 있다면 착취(exploitation)적으로 갈 것인가? 사회공헌적으로 갈 것인가? 선택을 해야했다. '좁은문'으로 가라고 했다. 착취적 성격이 그 기업의 사풍으로 자리잡을 정도인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브랜딩과 마케팅 처럼 기업외부사회로 다리를 놓은 후는 기업환경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좁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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