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 助연의 <채식주의.자> 영화소개와평론

채식주의가 동물사랑의 동의어고 육식주의자의 반댓말일까?? 솔찍히 잘 모르겠다. 채식주의자란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를 경유해 꽤 일반화 돼 있어도 많은 크리스찬이 채식주의를 하는 경우가 많고, 불가에서는 육식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똥똥한 내 동생은 독실한 크리스찬이나 고기를 꽤 좋아한다. 채식주의는 채식주의일 뿐이다. 채식주의는 인간 라이프스타일의 중요한 한 타입으로 서구에서도 꽤 다양한 부류가 있다. 동물에 대해 생명과 생활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좀 더 일반적인 태도며 운동. 지금 알고저 하는 것은 채식주의.자다. 생명과 삶, 먹이에 대한 쫌 다른 태도, 다른 방법, 다른 운동.  

<채식주의자>는 비극에 관한 기술은 아닌거 같다. 영화의 태도가 경직되고 어둡긴 하다. 우리 영화에서 소수를 다루는 태도가 어둡기도 하는 것은 영화적 클리쉐일뿐.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느날 느닷없이 채식주의로 돌변한다. 변증법적 태도라면 양질전화의 변화를 생각할테다. 그 동안에 누적된 변화요소가 쌓여 어느날 갑자기 주인공이 채식주의자로 변화하기! 영화적 근거는 쫌 허투스럽다. 양질전화라고 할 수 없다. 주어진 영화적 조건에서 무한상상력은 비현실적 공상만 남긴다.

영화의 태도일 때 기실 쫌 궁금했다. 이 사건이 왜?라는 물음과 함께 이것을 어떻게 받을까? 수긍할까?의 문제다. 좋은 소식이 온 것일까? 나쁜 소문이 나는 것 일까? 영화에서의 상투적 장치들은 밥상머리와 원기억을 보여준다. 1)주인공은 아버지와 밥상머리에서 고기먹기를 두고 강제와 거부를 오가는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 꽤 잔인했다. 2)어린시절 주인공은 사랑하는 강아지를 잡고 먹어야 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쫌 상투적인 장치가 아닌가?

영화에서는 중요한 장치가 하나 또 등장한다. 주인공은 자매의 동생이고 언니는 채식주의자가 물론 아니다. 주인공과 언니는 둘 다 결혼했는데 주인공의 남편은 일찌감치 화면밖으로 걸어나가고 언니의 남편, 즉 주인공의 형부만 남아 계속 영화적 장치 구실을 한다. 이거 원 아녀자들 노는데 남정네가 액서사리도 아니고.. 꽤 중요한 드라마트루기들을 이 삼각구도를 매개로 생상된다. 쫌 어이없는 설정과 내용도 쫌 등장한다. 형부는 예술가인데, 주인공의 채식주의자 커밍아웃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그녀를 매개로 하는 바디아트(body art) 작품을 만든다. 꽤 아름다운 장면들도 등장한다.

스포일러 상 더 줄거리를 노출하긴 어렵다. 다만 후반의 이야기 구성과 감정선들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주인공 채민서의 연기선 또한 아름다운 그의 몸과 함께 아름다운 선을 보인다. .. 이런 이야기 구조로 볼 때 김.여진은 사실 실종돼 버렸다는 느낌이다. 김여진의 연기세계가 그림자 같은데가 있다. 남자배우라면 권해효와 쫌 비슷하다. 권해효가 남자배우인 덕에 몇몇 티핑포인트를 충분히 잡는다라면 김여진은 더욱 그림자 같다. 그림자가 사물과 사람에게 꼭 붙는 태양의 흔적이라면 그림자가 없다면 사물도 사람도 태양 아래 녹았을지 모르겠다. 영화를 본다면 김.여진을 중심에 놓게 한 번 봐보길 다른 발견을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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