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없이 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비밀들 영화소개와평론

궁녀를 보면서 조선 왕조의 사극을 그렇게 특수하게 고증할 줄 몰랐다. 내시나 대감의 공간으로 왕이나 세자, 공주의 시간을 뺏는 특수한 장치를 탐색했다. 일정한 느낌으로는 황량하고 퇴락하는 왕조의 시공간을 궁녀들이라는 특수한 장치로 보여주고 있었다. 왕을 제외하고는 남성이 거의 안 나타나는 이 이상한 영화의 무대를 탐사하니 키노아이로 변한 것이다. 영화의 도입에서는 주인공의 이상한 장면이 겉표지로 나타나고 곧 바로 어떤 궁녀의 자살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궁녀를 자살한 것으로 뒤집어씌우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주인공은 어떠한 목표 의식 없이 자의식에의 맹종으로 그것을 바로 퍼트리려 한다. 죽은 궁녀의 친한 궁녀를 비롯해 또 한 궁녀가 죄를 뒤집어쓰고 갇혀 고문을 당한다. 주인공은 자기의 권한을 넘는 것에 무서움이 없고 상궁이 위협을 해도 오로지 진실을 고찰하고 제대로 퍼트리려고 한다. 죽은 궁녀는 후궁과 절친하고 후궁은 아이를 낳아 세자 책봉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궁중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첨예해진다. 왕궁에서는 여러 비나 후궁이 존재하나 오로지 남아를 낳아야 의미가 있는 존재이고 그 중 한 명은 세자로 책봉되어 법통을 잇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왕만이 거의 유일한 남자로서 나타나고 두어 번의 교접하는 장면이 으스스하게 그려진다. 사람간의 관계가 여자의 간계로 조종되는 왕이라는 무기력한 설정이 으스스하다. 영화의 전편이 궁녀들의 세계가 거의 전부라서 왕마저 궁녀들로부터 파생하여 존재하는 부유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어 이 영화의 특수한 세계를 표현한다. 영화의 정조는 남자의 여자에 대한 무지로부터 발전해 존재하는 세계관을 낳았는데 영화의 내부에는 실제의 남자는 거의 없고 단순히 기생적이다. 키노아이로서 존재하는 남자의 시점의 관음증이 궁녀의 세계를 좇고 주인공은 키노아이를 인도하는 전령으로서의 존재이다. 서사 구조가 쌓이면서 어떤 비밀은 일부분씩 풀어지고 어떤 비밀은 조금씩 더 비틀리게 된다. 영화를 이끄는 어두운 힘은 영화 서사의 규칙을 전복하는 가운데 새로운 권세를 드러낸다. 내시부라거나 대감이라거나 병졸이나 종친들 하나 없이 아주 몇 명의 남성만이 영화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 자격이 없이 쭉정이처럼 보인다. 키노아이가 보는 추상적인 서사 규칙의 존속을 위해서 그 씨내리들은 필요한 것일 뿐이다. 소여 없이 존재감이 살아 있는 남성이 보이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아 이 영화의 특수한 추상적 서사 규칙을 낳는다. 남성 주체로 결속되어 있는 영화 문법에의 상당히 대단한 파격인 이 영화는 영화적 소여를 위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형식 의미 구조에서의 단단한 껍질에 균열을 가한다. 어느 사회도 발견하지 않은 사회의 불임성이 영화적 의미의 연쇄로 미끄러지는 가운데 주체는 발을 헛딛는다.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지는 끝에 진창이 바닥인 것을 알 때 영화적 종결은 이뤄진다. 탐색하는 영화적 주체는 사실은 남성의 가면을 벗은 게 아닐까 물음이 주는 의미는 젠더의 사회적 의미는 그 사회가 소여한 가학 피학성의 가면을 어떻게 벗기려 드는가의 질문이다. 복면을 쓰거나 두건을 두른 행위자들의 기억은 기억이 무엇을 정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행위로 실제로 한 것이 중요하다는 공동 범죄의 잔해를 사방에 깨진 뼛조각처럼 뿌리고 있다. 사회의 여러 공간 중에서 특정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을 찾으며 시간은 퇴행하고 분산된 시공간의 끝 속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가면의 얼굴 위에 또 한 가면을 써 나가는 행렬의 끝에 죽음이 선포되거나 퍼뜨려지고 그것을 더 큰 사태로 덮게 되는 것이다. 전형적인 사극의 결말이 선포하는 새로운 잉태되는 부도덕성의 검은 깃발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하얀 선의 왕궁을 덮은 더 하얀 희극의 카타르시스는 손목이 비틀리고 아가리를 가로 막아 나타나는 권력의 선포를 체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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