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의 인생, N.P 책소개와서평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한 권 더 마저 읽어서 지금까지 총 두 권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책을 각 몇 권씩 읽었기에 이제 세 작가가 되었다. 한 두 명의 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 각 한 권씩 우선 읽을 계획이다. 내 일본 소설 읽는 계획은 일정한 결실을 거둘 때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최근 갑자기 일본 문제가 불거져 일본 문학에 접하는 데에도 일정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신경 안 써도 될 것이다. 양국 간의 경제적 마찰이 더 심화될지 소강 상태로 접어들지 모르지만 상호 이해 관계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면 좋을 것이다. 두 작품은 서사 구조가 특히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극적 구조가 없어 읽기에 심심했고 그러기에 특별한 감상문에 쓸 만한 내용도 없다. 일정한 서사문을 감상하는 재미도 덜하고 반복되지만 서사 구조도 부드럽다. 처음에 읽은 책은 시간상 오래되어 줄거리 자체도 기억에 흐리멍텅해졌지만 대단히 맑고 순수하다는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여러 인상이 자리잡았다. 두 번째 소설은 인물이 여럿 나오는데 일본어를 모르는 탓에 젠더와 역할이 흐리멍텅해 줄거리 자체도 흐리멍텅한 부분이 많다. 성과 이름이 섞인 경우도 있는데 동일한 인물인가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간단한 기둥 줄거리만 겨우 파지했으나 어렵다는 뜻은 아니고 단지 내 독서 경험이 그렇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두 책을 한 데 묶어서 일본 사회의 일단락을 여성 작가의 시도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이었다. 일본 사회는 여러 현상이 개인적 효과로 귀결된다는 인상이었다. 한국에서의 문학이 사회적 효과나 역사적 효과로 귀결되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의 사회 현상은 점점 사회, 역사적 효과가 개인적 효과로 지양되는 일반론을 얻냐면 그렇지는 않다. 대개 사회적으로 개체의 구체적 사례들이 삶의 일례로 두드러지는 형태로 번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 개별 인자나 소그룹의 삶의 모습이 감동을 주거나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형태의 문학이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개별자가 대표성을 얻어 일반화되는 것과도 조금 차이가 있다. 그저 개별자는 세계의 성좌의 명도와 조도가 어중간한 무수한 별들 중 작가의 이름으로 이름을 얻는 것이다. 왜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하냐면 사회적 현실이 주인공이 해체되는 세상으로 가기 때문이다. 별로 이름 없는 자들의 개별적 존재의 우연적 존재와 삶이 그 현실 아닌 현실로 사회를 조명하는 것이다. 계급 사회, 대중 사회의 해체가 빠른 식으로 진행 중인 사회적 경향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우리 사회로도 번질 것이다.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부당한 자리매김에 항의하는 작가의 운동은 일정한 지양을 만들 것이고 사회가 사라지는 만큼 빠른 속도로 인물도 사라질 것이다. 존재하는 것의 총체로서의 자리의 곳곳에 무수한 먼지들이 날리고 그것을 우리는 새로운 것의 도착으로 받아드려야 할 지 모른다. 대미를 장식하는 공룡의 죽음과 벌레들의 세상의 우세가 제공하는 사회 정당성의 암시에 객관적으로 적응하고 존재는 무와 같은 터무니 없는 현상으로 변한다. 거기에 약한 것의 미래가 존재하고 우리는 더 이상 연대하거나 단결하지 않고도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 덩어리가 부서져 가루가 되어서 사라지는 역사적 운동의 끝에 존재가 투명하게 깜박이다 꺼지어 가면 우리의 생도 끝날 것이고 그 이후는 남은 자들이나 새롭게 올라 오는 자들이 계획 할 문제이다. 발언권을 버리는 운동의 끝에 역설적인 공평성이 수립되지 않는가라고 추측을 할 수 있다. 그 무렵이면 가난하고 거친 세상에는 태초의 고독이 지배할 것이며 남루한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방독면을 드디어 벗을 것이다.  



애드센스(300*250중간직사각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