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시민, 디어 헌터 영화소개와평론

원래는 보려던 영화가 한 편 따로 있었다. 작품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나중에 보기로 하고 딴 영화를 한 편 더 봤고 감상문을 본 그 둘을 한데 묶었다. 앞으로도 틈틈이 영화를 보아 꾸준히 감상문을 생산할 것이다. 주제의식이 모범 시민과 공통이 된다는 짐작을 했던 그 한 편과 모범 시민을 한데 묶으면 변호권이 주제 의식으로 된다. 모범 시민을 디어 헌터와 한데 묶으면 주제 의식은 시민권이 된다. 과연 언제나 변호권은 보장이 되나 하는 질문이 시민권은 얼마나 확립이 되었을까 하는 질문으로 문제의식이 변형된다. 변호권의 진정한 보장은 사회적 악마의 권리에는 얼마나 해당할까 하는 여운이 남아있다. 사회적 악마는 준법의 테두리를 넘지만 범행에 자기정당성을 확보 중이다. 그러한 권리 확보는 궁극적으로 시민권으로 환원되는데 시민권의 향유는 의제적 보장을 벗어나야 한다. 모범 시민의 원제를 해석하면 준법 시민이다. 역설적인 제목으로 주인공이 왜 준법 시민인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파괴된 가족에게서 면탈된 사회적 권리를 복권하는 주인공이야말로 더 큰 사회적 법의 준수자인가를 논할 수는 있다. 그렇게 의역하면 그 법은 아버지의 법이 된다. 멀리서 큰 영감이 흐뭇하게 웃을까 모르겠다. 디어 헌터는 78년에 개봉된 영화로 월남전을 소재로 한다. 워낙 저명한 영화라서 주제 의식과 관계없이 한 번 보았으면 했던 터라 모범 시민과 엮은 주제의식이 떠올랐고 그것이 시민권이다. 디어 헌터의 월남전 참여 용사의 삶의 양식의 은유가 제공하는 것은 시민권의 보장으로 환원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된 줄거리의 통제된 주제를 조금만 벗어나면 시민권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적 환유가 보인다.

아무래도 강조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디어 헌터 쪽으로 쏠린다. 모범 시민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 구조를 갖추었고 디어 헌터는 검열 탓으로 인한 편집된 거친 연결을 필두로 수동적인 의미 구조를 갖추었다. 디어 헌터는 3시간여 시간의 대작인데 수년에 걸친 시간성이 녹아 있으며 모범 시민은 원초적 사건으로부터 10여년이 경과한 후 새로운 사건의 시간이 진행된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복수를 하여 사회적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주인공의 미망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고집으로 대리치환이 된 점은 이채롭다. 디어 헌터는 산문처럼 묘사되는 영상의 스케일과 구체적인 사건의 직접적 진행이 교차하는데 주인공이 심리 구조가 확고한 인물로 묘사된다. 구조적으로 두 번의 사슴 사냥과 세 번의 러시안 룰렛이 기능하고 있다. 한두 번의 총격과 관련된 장면은 반 번 정도의 러시안 룰렛으로 환원을 해도 된다. 모범 시민의 주인공과 검사와의 대질 신문이 몇 번 나오는데 안 세어봤다. 러시안 룰렛과 유의미한 유비 구조를 갖출까를 잠시 생각했으나 그렇지는 않다. 단지 그 대질 심문이 영화에서 하는 일정한 역할과 기능이 러시안 룰렛과 유사한 포맷을 갖출 수 있으며 그러한 현상은 많은 영화의 통사론적 문법의 역할과 기능으로 일반적이고 특이점은 없다. 양 영화에서의 경제론에 입각하면 모범 시민은 대중적 감성의 정의론을 축조하였고 디어 헌터는 감성의 정치학을 축조하였다.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영화적 하부 토대를 구성하여 누구를 감동시킬 것이며 그 결과는 어떠한 입헌적 효력을 장만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점이 분명했다. 영화의 경제론은 그 다음 투표에서의 유권자의 수로 환산할 수 있다. 우선 유권자가 되어야 선호하는 후보에게 지지표를 모아줄 수 있다.  




애드센스(300*250중간직사각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