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休日) 영화소개와평론

1968년 이만희 감독이 신성일, 전지연과 만든 이 흑백 영화를 73분의 길이로 오늘 비로소 감상했다. 요즘 아이들이 싫어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이 영화는 가난과 젊음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으면 혼전 성관계로 인한 임신중절의 수술비가 없어 일어나는 해프닝을 자연적 영상 미학으로 취급했다. 여러 정보를 좀 더 찾았는데 단편 영화라는 표현으로 이 영화를 가리켰고 사회 현실을 부정적으로 재현하여 대단한 검열을 받았는데 그때 잘린 영상 중에 앞뒤의 부분이 시사적이다. 좀 더 정리하면 실제는 단편 초과의 길이이었고 가난 때문에 자살한 남녀의 시체를 발견한다는 전개가 더 있다. 기억이 맞으면 이만희 감독은 만추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두 번 더 다시 만들어져 5공 때 한 번 현빈 주연으로 몇 년 전에 한 번 더 있었으나 원본 자체는 필름이 유실되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다. 이 작품에서의 여자 주인공의 얼굴은 요새 어떤 연예인을 떠올리며 몇 장면은 광고의 장면을 떠올리지만 그 사실 간의 관계가 유의미한가를 확인할 수 없다. 기억이 맞으면 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민간인이 소장 중이라서 완전멸실을 피했는데 혹시 이만희의 필름을 민간인이 소장 중으로 완전공개가 이뤄지면 좋겠다. 우리의 문화 기록물은 간혹 일본이나 해외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개인의 소장권을 국가가 파괴하는 환경아래 뜻있는 개인이 자기 권리를 양보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소개한 잘린 열개의 대신에 새점을 치는 장면이 나와 영화 전체의 복선으로 쓰는 서사 양식이 구축되었다. 그밖에 축약된 대사 대신에 음향과 영상시로 자연적 영상 미학이 구축된다. 그 점은 흑백 영화라서 그 극대화되는데 불투명한 서사성의 시적 영상이 낮은 정세도로 단일한 정보 제공을 한다. 그 잔여적 공간으로 의미의 배태를 벗어난 자연적 사회가 드러나서 그 점이 영화 검열이 두려워하나 파괴할 수 없는 사회 상황 같다. 시간의 흐름으로 60년대 후반의 사회를 지금으로부터 고증이 된 아버지의 사회로 동경 속에 몽롱하게 몰입해도 좋다. 한 사회의 계급 구성이 단일한 모순으로 대학생과 소사로 나뉠 뿐 지배 계급도 피지배층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영화의 표현의 자유가 일천한다는 점이며 사회 자체가 꽤 단수적이라는 감상도 든다. 자연적 영상 미학은 촬영기가 실제로 보여주는 것 이외에 일체의 가상이 없다. 가상할 수 있으려면 영화 예술의 자율적 권리가 보전되는 사회를 양도한다. 대개의 유신 이전의 영화가 표출하는 자연적 미학은 사회의 부정적 현실을 진공화를 시킨다. 영상 기록물에 나타나지 않는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단정할 수 없으나 그 기운을 수집하면 실제로 사회의 모순상이 단순하다는 기분이다. 고독하고 조용한 과거 사회의 영상이 제공하는 존재론은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속의 미학이 실제 사회의 허상이라는 점은 좀 더 강조된다. 현대 미학이 소란스럽게 현실을 재현한다면 구미학은 사실의 빙점에 얼어붙어있다. 영화가 재현하는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든 그 자체로 그 시대정신의 재현인데 한 사회의 현실이 실제로 어떠했던가를 더욱 더 궁금하게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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