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드라이버 영화소개와평론

영화의 반이 넘도록 주인공이 영웅이 아니라 미치광이가 아닐까 의심했다. 대개 액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영웅이라는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힌다. 요즘 읽는 중인 어떤 일본 소설의 주인공은 실제로 영웅이 아니라 미치광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성선설의 지배를 받는 선악관에 따르면 영웅이 존재하는 사회가 타락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악한의 행패 때문에 사회는 피해를 입는다. 후자는 배트맨의 사회관이다. 배트맨은 일정한 서사 규칙 탓에 사회의 사람들은 모진 고생 끝에 정의는 회복된다. 배트맨은 반영웅의 대접을 받는데 이 영화의 트래비스는 그것과 다르지만 또 다른 양식의 반영웅이다. 왜 절반의 영웅으로 취급을 하냐면 성격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대개의 영웅이 고난이나 역경을 겪는 과정이 나오더라도 그 절대적 능력과 권위를 가지며 사회성원이 그의 선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인 영웅을 비틀어 놓은 영화는 예전 어떤 흑인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가 생각난다. 절대적 능력과 권위를 가지지만 단지 약점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설정에 대응하는 악한의 전략은 사실상 인질극 말고는 없다. 힘의 논리로 악한이 이길 수 없는 절대 영웅이므로 그것을 꺾는 대표적 수단이 인질극이다. 인질극을 사용하면 거대한 선의 힘의 실질적 한계가 드러난다. 악한의 행위 규제를 실상 할 수 없도록 악한과 영웅, 사회 성원은 분리되어 있는 개체극이 작동한다. 트래비스가 사회의 부조리에 수많은 시민처럼 절망하지만 너무 무력해 그걸 해결하기는커녕 사실상 그 실상으로부터 격리된다. 논리적인 사회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을 때 사회 현상은 단지 부조리할 뿐 불규칙한 운동 양식의 일부이다. 그 때문에 영화 전편에서 트래비스의 분노는 개인적인 분노로 내비치지 대자적 사회의식의 결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게 최초에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트래비스의 불면증이다. 그 때문에 트래비스는 야간 택시 운전을 하고 이후 구조적인 사회 시스템의 운동에 접어들고 그것은 결국 어린 창녀와의 만남과 구조로 이어지는 인연으로 나타난다. 마치 행동주의가 시스템철학과 결함한 후의 결과 같은 양식 미학이 드러난다. 그 사이에 트래비스는 선거 운동원과의 데이트, 대권주자와의 만남. 동료 운전사들과의 회합 따위의 인연을 시스템으로부터 부여받는다. 내가 영화의 대부분을 그가 영웅이 아니라 미치광이이고 그의 행위 동기가 대자적 사회 폭력이 아니라 개인적 화풀이로 이해했다가 마지막에 마음을 바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사회시스템의 인자이지 진정한 행위의 주체인 행동주의자는 아니라고 보았고 그 증거는 그의 인연과 업의 행렬 때문이다. 미국식 행동주의자는 개체를 넘어 또 다른 인자들과 조합을 형성하고 집단의식을 규정한다. 그게 일부 그의 인연의 행보로 일부 나타나고 그래서 트래비스는 반영웅, 반쪽짜리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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