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애프터 영화소개와평론

오랫동안 갖고 있다가 별 동기부여 없이 이 디브이디를 보았다. 이 디브이디를 샀었을 때는 일정한 동기부여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타이틀은 내세를 뜻한다는 점을 그때 이미 어렴풋이 알았었기 때문이다. 살 때는 동기부여가 되었으되 일정한 부담감으로 내버려두고 있다가 특별한 동기부여 없이 이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그 기간은 최초의 각인된 동기부여라는 이름의 선입견을 지워가는 시간이었으리라. 영화에는 세 가지의 이야기가 서로 꼬여있다. 대형 자연 재해의 피해자인 여성, 형제가 죽은 남자아이, 영매의 능력이 있는 남성의 이야기가 병렬되어서 진행되다가 서로 만나서 상호교감을 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특별히 강력한 메시지의 제시는 없으나 굳이 그걸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내세를 믿느냐는 질문이다. 내세를 믿는 많은 기독교 문명권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내세와 관련한 자기자신의 사실을 보여주고 그것들은 서로 연결된다. 마침 어린 연예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린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를 고민했었던 적이 있어서 그때의 관념 형성은 이 영화에서 어떠한 동기를 찾게 만들었다. 내세라는 주제의식은 현세 중심의 비기독교 문명권에서는 어차피 매우 낯설다. 한국의 지배적 종교 문명은 불교와 혼합된 유교다. 제사를 모시고 성묘를 하며 윤회나 재생에 대한 기초적 인식이 신념의 형태거나 지식의 형태로 어느 정도 다 있다. 비교 종교학적 관념의 차이는 그들은 사자와의 실제적 접촉을 정당화하지 않는 문명이고 이 영화에서의 그러한 접촉은 모두 일정한 문화적 반칙에 속한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과는 달리 그들에게 애틋한 그리움을 추도와 추모의 의식을 넘어서 간직하고 있다. 그 점은 인간의 추도와 추모의 의식이 대개 일정한 부조화의 상태라는 점으로 그걸 넘어서 더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형태의 몰과학이 샤머니즘 등의 형태로 사회의 여러 곳에 담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연결의 상태를 추구하는 그들의 심리 상태는 나와 달리 나로서는 이해 못 하는 다른 종류의 동기를 갖추고 있는 것이며 거기서 사회의 힘이 부여 못하는 해결 방식은 존립한다. 여기서는 부작용이나 역기능의 형태를 벗어나 일정한 이데올로기의 포장아래 일정한 미화작용의 장에 포섭된 그것은 실제로는 사회적 환상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한다. 종교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번외 경기의 진실성이 나타내는 점은 실제로는 사회적 부조리의 장의 사실적 현현으로 거기에는 모순적 사회 현실의 일단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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