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무엇인가? 책소개와서평


복잡한 사회일로 책을 잘 읽기가 어려워 앙드레 바쟁의 이 책을 두어 달에 걸쳐 읽었다. 읽다만 책을 몇 권 정해서 다 읽으려는 계획에 따라 읽었었다. 이 책을 보면서 사진 두 장은 페이스북의 커버 사진으로 사용했다. 네 권으로 이뤄진 책으로 한 권으로 축약한 판을 번역했고 우리말로 네 권이 다 번역돼 있다면 구매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히 일어났다. 앙드레 바쟁은 대표적 영화비평가로 유일한 영화비평가다. 젊어서 마흔쯤에 요절했고 내가 읽은 글들은 주로 오십 년대의 글이었다. 다큐, 연극영화, 데쿠파주, 네오리얼리즘 따위를 다뤘다. 그중 뒤의 두 군데에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지속’에 결부해 다룬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불어를 몰라서 이 단어의 의미를 상상하면서 읽은 짧은 부분은 끔찍한 상상력으로 이어졌었기에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의 지속은 짧은 파괴와 공포의 순간을 목격한 자의 주관적 시간이고 이후 그것의 상처회복으로서의 객관적 시간이다. 시간을 거슬러 쓰이어진 글은 번역가의 안경알로 꺾여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알튀세르에 관한 서사력을 회복했다. 글의 전체로 영화에 대한 서술은 현대영화의 감각과는 거슬리어진다고 애초에 단정을 했었다. 전에 읽다가 만 이유도 이게 현대영화와는 많이 다른 영화를 제재로 삼았기에 시간적 차이를 일으키고 문장의 서술이 너무 불편해 자연적으로 읽기 힘들었다. 영화에 관한 총체적이고 단일한 심상은 없다. 한낱 짧은 적요로 다양한 영화들의 무수한 개수를 다 묶으려면 언어적 서술과 설명을 넘어야 한다. 무수한 개수로 된 한 실체를 짧고 작은 심상의 한 가지로 통일시킨다는 방법은 심심할 때 놀이이지 사실은 아니다. 다양한 것은 다양하게 단일한 것은 단일하게 가급적 분기해나간 가지의 수의 경우의 수대로 알아가고 영화이니 봐 가면 될 것이다. 영화는 단지 무엇이라는 물질적 대상이라는 점을 바쟁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었고 마음속의 주관적 심상이라거나 정신이나 이데올로기의 영역이라면 바쟁을 일부 따르게 되는 것이다. 바쟁은 일정하게 싫어하는 영화현상이 있었고 거기에 반대해 사랑하는 영화적 현상이 있었다. 바쟁이 설립한 카이에 드 시네마의 나중 참가자는 누벨바그를 작가주의 비평을 이끌었고 또 어떤 자들은 바쟁을 반정립으로 시켰다. 나는 그런 류의 의도는 없고 적장자의 상속분에 관심이 더 커 바쟁의 영화, 비평적 유산에 관심이 많다. 영화는 누구이기도 하다. 




애드센스(300*250중간직사각형)